지난달 17일 찾은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의 치매 돌봄 센터 '후카우라의 집'. 고가 미츠에(101), 노구치 기쿠에(95) 할머니의 대화에 거실에 둘러 앉아있던 노인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곳의 최고령 어른인 고가 할머니는 2013년부터 후카우라의 집에서 돌봄을 받았다. 치매 초기엔 점심 식사만 이곳에서 해결했지만, 증세가 악화되자 하루의 대부분을 센터에서 보냈다. 5년 전부터는 집에서 혼자 지내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한국이었다면 정들었던 센터를 떠나 요양원에 입소했겠지만, 할머니는 24시간 후카우라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고가 할머니가 후카우라의 집을 계속 이용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 '소규모 다기능 돌봄 센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없는 형태의 돌봄시설로, 도시락 배달부터, 식사 제공, 방문요양 및 목욕, 주간돌봄과 요양원 역할까지 겸한다. 센터 내부에는 거실과 욕실, 숙박을 위한 1인 1실 공간 등 다양한 서비스 시설이 마련돼 있다.
센터의 최대 장점은 치매 환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 환자들은 환경 변화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곳은 거의 모든 형태의 돌봄을 제공하기 때문에 증세가 악화되더라도 정들었던 친구나 요양보호사와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 고가 할머니도 '후카우라의 집에서 무엇이 가장 좋냐'고 묻자, 노구치 할머니를 가리키며 "도모다치(친구)"라고 답했다. 노구치 할머니는 고가 할머니 옆방에서 머물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노구치 할머니 역시 "일어났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좋다. 거실로 나오면 친구들이 북적거려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환자 가족들도 다양한 돌봄 서비스가 한곳에서 제공되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2019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소규모 다기능 돌봄 센터를 이용하는 이유(복수응답)로 '방문요양, 숙박, 주간보호 동시 제공(53.7%)'과 '돌봄 형태의 유연성(46.8%)'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우메자키 유우키 후카우라의 집 대표는 "하루는 방문요양, 다른 날은 주간돌봄, 또 하루는 도시락 배달 등 어르신들 요청에 따라 돌봄 서비스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처음 만들어진 소규모 다기능 돌봄 센터는 현재 일본 내 5,531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입소 정원은 29명으로 제한돼 있다. 작은 시설을 여러 개 만들어 최대한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돌봄을 받도록 하는 게 일본 치매 돌봄 정책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오무타시 내 소규모 다기능 돌봄 센터(23개)는 시내 초등학교 수(19개)보다 많다.
소규모 다기능 돌봄 센터가 멀티플렉스라면, 오무타시에 6곳이 설치된 지역포괄지원센터는 '치매 동사무소' 역할을 한다. 치매가 의심되면 조기에 검진받을 수 있고, 돌봄시설이나 장기요양보험 지원에 대한 상담이 가능하다. 센터에 있는 '케어 매니저'는 치매 환자의 돌봄 전반을 관리한다. 환자·보호자와 상담하며 원하는 돌봄 종류를 묻고 이용 가능한 시설을 알려준다.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환자 상태를 해당 시설에 공유하고 입소 날짜를 조율한다. 시설을 옮기거나 돌봄 형태를 바꾸고 싶을 때도 케어 매니저에게 연락하면 알아봐준다. 오마가리 미에 오무타시 복지과 과장은 "케어 매니저 1명이 30~40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폭력성이나 배회 증상이 보이면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임시 위원회를 꾸려 특별 관리한다. 우메자키 대표는 "치료가 필요한지, 돌봄이 필요한지 우선 판단한 뒤 간호사, 사회복지사, 케어 매니저, 환자 가족을 중심으로 꾸려진 위원회에서 병원으로 보낼지 시설로 보낼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지역포괄지원센터와 비슷한 기관인 치매안심센터가 있지만, 일본의 30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일본 내 지원센터는 5,404개로 지소까지 포함하면 7,409곳에 달한다. 반면 기초단체별로 한 곳씩 설치된 한국의 치매안심센터는 256곳에 불과하다. 양국 치매 환자 수를 고려하면, 일본은 센터 1곳에서 851명, 한국은 3,632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서비스의 질적 차이도 있다. 한국에선 케어 매니저와 같은 연계 서비스를 기대하긴 힘들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도 보호자가 직접 돌봄시설에 연락하고 입소를 신청한 뒤 환자의 일과까지 짜야 한다. 배회와 폭력성을 보이면 입소를 거절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무타시는 지난해 치매 환자들을 위한 '미팅센터' 3곳도 만들었다. 주간보호시설 등에선 사회복지사들이 운동·음악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짜지만, 이곳에선 오로지 환자들끼리 논의해 하고 싶은 일을 정한다.
지난달 17일 미팅센터에서 만난 오쿠조노 고이치로(78) 할아버지는 "이번엔 야채를 기르기로 해 직접 수확했다"며 가지와 피망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올해 1월 미팅센터 활동을 시작한 오쿠조노 할아버지는 "환자들끼리 등산도 하고, 갯벌로 철새 구경도 갔다. 온천에서 맥주도 마셨는데 그게 가장 좋았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치매 환자들의 의견은 돌봄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 다케시타 가즈기 오무타시 사회복지사는 "환자들 목소리를 들어보니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문제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가령 의사가 치매 종류(알츠하이머, 뇌혈관성 등)를 알려주면 보호자들은 인터넷 검색부터 하지만, 고령 환자들은 도서관에 가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이다. 다케시타 사회복지사는 "그동안 치매 관련 책이 도서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환자들이 찾기 어려웠다"며 "시립 도서관에 치매 관련 책만 모아둔 특별 코너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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