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철도노조 총파업에 정부는 '강공'...철도 파행 장기화 우려

입력
2023.09.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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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14~18일 1차 총파업 돌입
첫날 열차 운행률 평소의 70%대
커지는 시민 불편..."양측 대화 나서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14일 오전 9시 '철도 민영화 저지'를 기치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19년 이후 4년 만의 철도노조 총파업이다. 정부는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고 양보 없는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양측의 힘겨루기에 철도 이용이 급증하는 추석 연휴까지 파업 영향권에 들어갈 경우 국민 불편과 경제적 타격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도노조 "탄압 굴하지 않고 민영화 저지"

철도노조 서울본부는 이날 서울역 앞에서 출정식을 열어 "이번 총파업은 국토교통부가 초래한 열차 대란을 정상화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그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불합리한 철도 쪼개기 민영화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이외에 부산 대전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조합원 약 1만3,000명이 참가해 세를 과시했다. 총파업은 오는 18일 오전 9시까지 계속된다.

철도노조의 요구사항은 △부산과 수서를 오가는 KTX 운행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성실한 교섭 및 합의 이행 △4조 2교대 전면 시행 세 가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수서행 KTX 운행을 통한 '철도 민영화 저지'다. 국토부는 이달 1일부터 부산과 수서 간 수서고속열차(SRT)를 감축하면서 전라선·경전선·동해선에 SRT를 새로 투입했다. 철도노조는 이를 '철도 민영화의 포석'으로 본다.

정부는 철도노조의 주장을 일축했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철도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장으로서 깊이 사과 드린다"면서도 "파업은 수서행 KTX 운행과 고속철도 통합 등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정부 정책이 핵심 목적이라 정당성이 없다"고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철도노조가 지켜야 할 자리는 정치 투쟁의 싸움터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터인 철도 현장"이라며 "즉각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보수정부에서 최대 두 달 파업...전문가 "대화 나서라"

철도노조 파업으로 예매한 열차가 취소되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승객들의 불편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국토부가 집계한 전국 열차 운행률은 평소의 76.4%로 떨어졌다. KTX(76.4%)와 수도권 전철(83.0%)보다는 화물열차(26.3%) 운행에 타격이 큰 상황이다.

철도노조와 정부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1월에 철도노조 파업은 닷새를 넘기지 않았으나 보수 정권이었던 2013년 12월과 2016년 9월에는 전면 대치로 치달아 두 달(74일) 넘게 계속되기도 했다. 철도노조는 18일까지 예고한 1차 파업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2차, 3차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관되게 노조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노조의 강경한 반발을 부를 여지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안전 운임제' 유지를 요구한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해 15일 만에 투항을 이끌어냈다.

노동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양측의 대화를 제안했다. 정흥준 한국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화물 열차 마비에 따른 산업 피해를 걱정할 수밖에 없고 철도노조도 조직원 해고를 감수하면서까지 파업을 장기화하기는 힘들다"며 "철도노조와 정부가 타협 가능한 선을 정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여론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았기에 이번 파업도 압박에 나설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부 지지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결국 여론의 움직임이 파업 장기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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