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도, 프로코피예프도 푸틴의 것이 아닙니다. 이분들의 음악은 인류의 유산이지 특정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죠."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기자들과 만난 우크라이나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의 첫 내한 소감은 전쟁 반대와 고국과 인류의 평화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는 17일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등 러시아 음악을 들려준다. 그는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했을 것"이라며 최근 일각에서 나오는 '러시아 음악 보이콧' 움직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예술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영혼을 치유하고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며 "현대 예술가는 작곡가의 걸작을 재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어떤 것을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를 이번 연주회 곡목에 포함시켰다. 지난 3월 리니우가 예술감독을 맡아 이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 초연된 곡이다.
리니우는 2016년 젊은 음악가 육성을 위해 13~23세 단원들을 모아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지만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후에는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피란을 돕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그는 "많은 단원들이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집이 폭격을 당하는 등 가슴 아픈 상황을 겪고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리니우 역시 전쟁 발발 후 한번도 고국에 가지 못했다. 부모님과는 독일, 체코, 이탈리아 등지에서 따로 만났다. 12월 중순 고국 방문 계획을 세워 뒀지만 하늘길이 닫혀 버스와 기차로 30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고된 여정이 될 예정이다. 그는 "전화 통화는 자주 하지만 어머니가 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리니우는 최근 지휘계의 여풍을 선도하고 있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45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이자 259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다. 그는 "지금은 여성 지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내가 학생일 때는 교수와 학생을 통틀어 여자가 나 혼자였다"면서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 많은 이들이 여성은 지휘자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들을 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또 "독일에서 한국 지휘자 김은선(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과 함께 공부한 적도 있다”며 "다음 세대 여성 지휘자들이 더 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긍정적 모범을 보이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