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는 'RE100'에 가입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전력 소모량을 아끼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외려 세계적 반도체 투자 경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15일은 삼성전자가 혁신 기술로 글로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에서 '신(新)환경 경영전략'을 발표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정가스 저감, 폐전자제품 수거 및 재활용, 수자원 보존, 오염물질 최소화 등에 2030년까지 총 7조 원 이상 투자할 계획"이라며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 달성을 위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 회사가 6월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31%다. 전 세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8,704기가와트시(GWh)로 2021년 대비 65%를 늘렸다. 사업장에 자체 태양광 발전 등을 설치하고 기술 혁신으로 공정 자체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줄였다. 이를 토대로 2022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대비 1,016만 이산화탄소환산톤(tCO2-eq)을 감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에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은 여전히 만만찮은 도전이다. 특히 공정을 끊임없이 돌려야 하는 반도체 산업이 워낙 전력 소비량이 많아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전과 모바일 등 DX부문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93%에 이르지만 반도체 등 DS부문의 전환율은 23%에 머물렀다. 여기에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보도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 전체 전력에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8.95%에 머물렀다.
이런 어려움은 삼성전자만 겪는 것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율을 2021년 4%대에서 2022년 29.6%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100%까지 올린 데 힘입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는 좁은 국토 면적, 낮은 일사량과 저풍속 환경 등 열악한 입지 조건으로 인한 지리적 한계로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한국만의 고민도 아니다.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율이 10% 수준이다. 대만 내 공장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어 2030년쯤에는 대만 전력의 4분의 1을 쓸 것으로 추산되는데 2022년 기준 대만 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8.27% 수준이다.
현재 반도체 기업들이 공장 증설 경쟁을 펼치고 있어 당분간 전력 소비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성·하이닉스·TSMC는 모두 인공지능(AI)이 각광을 받으면서 당장 폭발하는 최고성능 반도체 수요에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아시아권은 재생에너지 비중도 떨어지는 데다 수입도 어렵고 인증서 시장도 파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나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 공장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비용이나 시간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낮다. 미국 기술 전문 매체 '인포메이션'은 애플이 TSMC의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전용 칩을 생산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 칩의 최종 조립은 결국 대만 공장에서 이뤄진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앞서 나간다는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빅 테크)조차도 결국 재생에너지 활용이 부족한 아시아의 공장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결국 단일 기업만의 힘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해결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2022년 11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서 반도체업계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만든 반도체기후컨소시엄(SCC)에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제적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국내를 포함해 아시아 지역 재생에너지 시장이 확대되고 사용도 활발해질 수 있도록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