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작가 정지아가 전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 벽 허무는 도수 높은 추억들

입력
2023.09.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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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첫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빨치산 출신 부모 이야기를 소설화한 '빨치산의 딸'을 쓰고 몇 년간 수배자로 도피 생활을 한 작가에게 위스키는 일종의 동반자였다. 한겨울 지리산 산장으로 숨어든 그는 배낭 깊숙이 담아 온 위스키 몇 잔을 들이켜고서야 비로소 숨이 편하게 쉬어졌다. 낮보다 밤에 글을 쓰는 습관을 가능하게 한 것도 술이었다. 술이 있어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만 정적을 가르는 긴긴밤이 외롭지 않았다.

신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술을 매개로 한 에세이다. 32년 만에 출간한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지난해 화제의 중심에 선 정지아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을 치르는 사흘간의 시간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그린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에서도 아버지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술잔을 부딪히며 벽을 허문 사람들과의 이야기 34편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눈이 퍼붓던 열아홉의 어느 날 작가는 사회주의자 아버지가 권한 매실주로 처음 술을 접했다. '빨치산의 딸'을 계간 '실천문학'에 연재하던 20대 시절을 돌아보면서는 "나를 술꾼으로 만든 건 시 쓰는 김사인 선생"이라고 잡지 편집위원이던 시인 김사인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한다. 2005년 여름 남북작가대회 참석차 방문한 평양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부르주아 태생의 아버지의 동지'로 등장했던 '김OO 선생'의 소식을 북한 작가 남대현으로부터 들었던 일화도 담겼다.

작가에게 술은 단지 취하는 것 이상이다. 그는 에필로그에 "나는 사람들이 좋고, 그들과 바닥까지 솔직해지는 시간들이 좋고, 술은 우리 사이의 윤활유"라고 적었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