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 배회 확률 : 도시 75.1%, 시골 18.5%.
도시에 사는 치매 노인이 10번 외출해 8번 길을 헤맸다면, 시골 치매 노인은 10번 중 두 차례만 배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가 시골보다 길도 복잡하고 노인들을 자극할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녀와 함께 거주하거나 평소 외출을 많이 하는 치매 노인은 배회 확률이 훨씬 낮았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8일까지 한양대 치매배회연구팀(류호경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호진 한양대 의과대 신경과 교수)과 함께 치매 노인 32명이 부착한 배회 감지기(행복 GPS) 데이터 6개월치를 확보해 분석했다. 이 가운데 유의미한 자료가 포함된 13명의 데이터를 분석 대상으로 정한 뒤 가족 인터뷰를 진행했다. GPS를 통해 치매 노인의 구체적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데이터 분석 결과, 치매 노인들은 보호자와의 산책을 포함해 평균적으로 10일 중 6일을 집 밖으로 나와 걸어 다녔다. 이동 거리는 하루 평균 2.6㎞였고, 속도는 분당 26m 정도였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오는 180도 방향 전환도 하루 평균 14차례 있었다.
본보와 연구팀은 치매 노인이 언제 배회했는지 보호자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음 속도 등을 토대로 배회 패턴을 따져봤다. △GPS 이용자의 걸음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거나 △느린 속도로 걷다가 멈추거나 △느리게 걷다가 누군가의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한 경우를 배회로 구분했다. 치매에서 배회란 부적절하게 걷거나 문제 있는 보행을 의미한다. 배회가 시작되면 실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골절상 같은 단순 사고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녀와 함께 사는 치매 노인 5명의 평균 배회 확률은 5.5%에 그쳤다. 100번 외출했을 때 6번만 배회했다는 의미다. 5명 중 3명은 6개월간 한 번도 배회하지 않는 등 '실종 리스크'가 거의 없었다. 4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허수원(69·가명)씨의 GP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6개월간 배회한 흔적이 없었다. 허씨도 한때는 배회 증상이 심했다. 목적지도 없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집을 자주 나갔다. 증상이 심할 땐 집에서 2.5㎞나 떨어진 예전 주거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허씨의 딸은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며 나가려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수소문 끝에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딸은 결국 출근한 후 자주 배회하는 엄마의 특성을 고려해 1년 전쯤 문에 시정장치를 설치했다.
반면 혼자 살거나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는 치매 노인 8명은 평균 10일 중 7일(69.2%)이나 길을 헤맸던 것으로 조사됐다.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배회 가능성이 확 높아진다는 의미다. 특히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어도 고령이고 몸이 아픈 경우가 많아 배회를 막기엔 힘에 부쳤다.
류호경 교수는 "한 어르신은 GPS 데이터 값이 정상적이지 않았는데, 아들이 출근할 때 부모를 사무실에 데리고 갔다가 함께 퇴근하며 24시간을 돌보고 있었다"며 "주간보호사들이 어르신을 돌보는 경우에도 배회 확률이 낮게 나오고 있어, 보호자의 유무가 배회를 예방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호진 교수도 "배회하면 실종 위험이 높아지므로 시정장치 설치는 단기적으론 도움이 된다"며 "다만 장기적으론 신체 활동 유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치매 노인이 마주하는 교차로(주변 환경)가 많을수록 배회 빈도는 높았다. 본보와 연구팀은 GPS 이용자 10명을 도시(7명)와 시골(3명) 지역으로 구분한 뒤 마주했던 교차로 수와 배회 확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도시에선 치매 노인이 하루 평균 15번의 교차로를 마주했고 배회 확률은 75.1%였다. 교차로가 많은 탓인지 도시에서의 배회 동선은 무작위로 뻗어나갔다. 반면 시골에선 평균 3번의 교차로를 마주했고 배회 확률은 18.5%로 그쳤다. 동선도 비교적 일정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김현도 한양대 이매진엑스랩(Imagine X Lab) 연구원은 "환경 자극이 많아질수록 치매 노인이 배회할 확률은 큰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GPS 이용자 가운데 10명 중 8명은 목적지가 있었고, 그곳으로 가던 중 길을 잃었다. 주요 목적지는 △자녀의 집 △과거 자신의 집 △과거 직장 △주요 산책로 등이었다. 2명은 목적지도 없었고, 배회 경로도 일정한 패턴이 없었다. 류호경 교수는 "건강한 사람들은 목적지로 갈 때 길 찾기 검색을 통해 최적 경로로 이동하지만 치매 환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며 "그들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하고, 돌아오다가 또 길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연출됐다"고 밝혔다.
치매 환자인 이정희(89·가명)씨는 3년 전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20회 이상 배회했는데, 길을 잃을 때면 근처에 사는 딸이 이씨가 착용한 GPS를 보고 엄마를 찾았다. 이씨는 전북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딸 집을 향해 가다가 자주 길을 잃었다.
이씨의 GPS 동선을 보면 6월 10일 오후 6시 24분 자신의 집에서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약 3㎞ 떨어진 곳에 딸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650m까지는 분당 26m 속도로 걸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급격히 걸음 속도가 감소했다. 미로처럼 얽힌 육거리가 눈앞에 펼쳐졌고 이곳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육거리 인근을 배회하면서 걸음 속도가 분당 9m까지 떨어졌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이날 오후 7시 35분 육거리 인근에서 엄마를 발견한 딸은 차에 태워 집으로 모셨다.
지난 16일 한국일보가 이씨가 배회했던 육거리를 찾아 직접 확인한 결과 한눈에 보기에도 복잡했다. 이씨가 육거리에 도착하기까지 인도와 차도의 명확한 경계는 없었고, 육거리를 건너려면 총 세 차례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이씨가 딸 집을 가려면 육거리 중 가장 큰 도로를 가로질러 산 옆의 좁은 길을 따라가야 했지만, 이씨는 바로 옆에 있는 큰길로 접어들었다. 이씨는 딸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인근을 반복적으로 오가거나 정체하면서 배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자신의 집 인근 오거리에서도 길을 자주 잃었다. 오거리에는 신호가 없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신호 없이 오가는 차량 때문에 보행이 쉽지 않았다. 이씨는 4월 3일 오후 10시 27분에 딸 집을 향해 출발했는데, 오거리를 지나면서부터 걸음 속도가 떨어지며 헤매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32분에 집에서 남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될 때까지 이씨는 반시계 방향으로 부근을 계속 돌며 밤새 배회했다. 딸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과거 우리 집에서 집안 행사를 많이 했는데, 엄마가 그 기억으로 걸어오다가 자주 길을 잃는다"며 "엄마 마음속에 딸 집은 분명히 있는데, 오는 길은 자꾸 까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남 지역에 거주하는 권순호(84·가명)씨는 새벽마다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밭에 나간다. 3년 전쯤 치매 판정을 받은 뒤 밭일은 남에게 맡겼지만, 순찰하듯 보고 오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길을 잃어버리고 집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1년 전부터 배회 증상이 눈에 띌 정도로 심해졌는데, 지난 6개월간 GPS 동선 기록을 보면 10번 외출하면 3번(27.8%)은 길을 잃었다. 다만, 권씨가 다닌 길을 살펴보니, 비교적 일정한 경향성이 있었다. 아무래도 시골 길이 도시보다 단조로운 탓에 배회 패턴이 복잡하진 않았다.
실제로 권씨는 밭에 가려다 마을을 자주 배회했다. 그러다 집 인근에서 발견되곤 했다. 권씨는 6월 15일 오전 7시 7분 자신의 집에서 나와 마을과 인근 밭을 배회한 후 오전 10시 46분에 집 근처에서 발견됐다. 배회한 거리는 800m 정도인데 걸음 속도는 분당 4m에 불과했다. 마을 어귀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오래 머물렀던 탓이다. 보통 사람이면 10분이면 오갈 거리를 3시간 이상 방황했던 셈이다.
치매 환자가 평소에 외출을 많이 할수록 길을 잃을 확률은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100일 중 90일을 외출한 이용자는 5일 정도만 배회한 반면, 100일 중 열흘 외출한 이용자는 7일이나 길을 헤맸다. 치매 증상이 심각하지 않기에 외출을 많이 했을 수도 있지만, 배회 확률을 낮추려고 주기적으로 산책한 게 효과를 봤을 수도 있다.
치매 노인들의 6개월간 외출 빈도는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 평균 40회로, 자녀가 없는 노인(20회)보다 두 배 많았다. 자녀가 치매 부모와 함께 살면 배회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함께 산책하거나 혼자 산책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우자 및 딸과 함께 사는 노정임(71·가명)씨도 서울 남산길과 한강을 자주 산책한다. 외출할 때는 무조건 남편이나 요양보호사가 함께 한다. 10년 전 혈관성 치매에 걸린 뒤 인지 능력까지 저하돼 누군가의 돌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배회 증상이 심해졌다는 윤해수(85·가명)씨도 매일 오전 7시쯤 집에서 1.3㎞ 떨어진 등대에 혼자 산책하러 간다. 병원에서 배회 증상을 완화하려면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산책 습관을 들일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최호진 교수는 "산책은 외부 활동 욕구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예방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일보가 행복 GPS 사업을 위탁받은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과 함께 배회 감지기 이용자 4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 달에 한 번 배회한다는 응답이 19.6%로 가장 많았다. 하루 중 수시로(18.1%), 2~3일에 한 번(16.2%), 일주일에 한 번(15.1%), 하루에 한 번 이상(12.1%) 순으로 나타났다.
배회 발생 시간은 저녁 시간에서 잠들기까지가 30.2%로 가장 많았고, 점심~저녁 29.8%, 아침~점심이 17.7% 순이었다. 배회 패턴 및 특징에 대해선 '뚜렷한 방향 없이 무작위로 왔다 갔다'가 31.7%로 가장 많았고, '문 앞을 서성인다' 29.8%, '주저함 없이 앞으로 직진'이 25.3%였다.
▶치매 환자들은 왜 자꾸 길을 잃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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