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 겁없는 귀촌 창업 "'지방=실패' 편견 깨고 싶었어요"

입력
2023.09.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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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소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
대기업 다니다가 5년 전 강원 원주로 이주 
산림 교육 서비스업, 직원 5명 연 매출 6억
"도전 정신 청년 뭉칠 수 있는 환경 만들고, 
지역 안착 가능한 정교한 정책 뒷받침돼야"

“이젠 서울로 돌아가 못 살 것 같아요!”

1983년생 김소민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공부도 서울에서 했고, 취업도 서울에 있는 회사로 했다. 경기도에 있는 연구소로 출퇴근할 땐 회사 기숙사나 근처에서 자취할 법도 했지만, 서울 집에서 출퇴근했다. “좋게 이야기하면 서울 토박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서울 촌놈이었죠. 서울 벗어나면 죽는 줄 알던···.”

‘서울 촌놈’ 소릴 들어도 나쁘진 않았다. 발붙이고 사는 곳은 인재와 자본이 몰려든다는 수도 서울이었고, 다니던 일터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이었다. 틀에 갇힌 수동적인 삶이긴 했지만, 사방의 부러운 시선을 느껴가며 행복도 맛봤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구조조정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서울 밖은 정말 살기 힘들까?’

퇴사를 결심했다. 직장인 삶의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경험하지 않은, 서울 밖에서 창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년창업 메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끌려 2018년 강원 원주시에 주민등록을 했다. 연고는 물론 지인도 하나 없던 곳이었다.

서울 토박이에겐 힘들었다. 1년 동안 서울 집에서 원주까지 출퇴근 전쟁을 했다. 원주에 있는 한 대학의 창업센터에 사무실을 얻었지만, 지방 생활에 적응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된 출퇴근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울 대기업 퇴사, 지방 이주 창업’으로 압축되는 일생의 결정을 내린 뒤 벌여야 했던 싸움이 더 버거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상대는 바로 ‘서울=성공, 지방=실패 또는 패배’라는 세상의 편견이었다. 10일 원주 자신의 농장에서 만난 김씨는 “퇴사해 강원도로 간다고 하니 모두가 ‘망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며 “그 인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상 우리 미래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팔을 더 걷어붙였다”고 회상했다.

강원 원주로 이주한 서울 토박이가 택한 사업 분야는 임업.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기업에서 일한 이력을 감안하면 연결 고리가 약해 보인다. 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산림이 국토 면적의 64%를 차지하는데도 30% 수준인 독일과 프랑스 등에 비해 관련 일자리가 적다는 사실에 착안했다”며 “처음에 큰 수익을 내지 못해도 앞으로 더 큰 사업이 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기획력으로 구상한 ‘사유림경영관리 플랫폼’이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수상하면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임업인 단체는 물론, 귀촌귀농센터, 중앙부처 공무원까지 다양했다. 내친김에 임업 관련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를 창업했다.

김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한다”며 “돈은 적게 벌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회사는 지난해 기준 직원 5명에, 매출 6억 원 규모의 소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 절반은 농림산물 생산과 유통, 나머지는 교육사업과 공모사업을 통해 올린 것이다.

그는 ‘서울=성공’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청년이 더 많아져야 지방 소멸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직원들을 채용할 때 퇴사 이후의 목적을 확인하고, 뽑은 뒤엔 그에 맞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김씨는 “직원 1명이 공모사업으로만 1년엔 1억 원 정도의 매출은 올릴 수 있도록 키운다”며 “어느 수준에 올랐다고 보면 내보낸다”고 했다. 이렇게 ‘해고’된 직원들은 관광, 홍보 등 저마다의 분야에서 창업해 지역 고용 창출은 물론,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임업 교육서비스 사업을 하며 청년사업가도 양성하는 셈이다.

청년들이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고, 그 온기로 지방을 살리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가 더 많은 청년들이 뭉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고 김씨는 강조한다. 그는 “지방에서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들이 고전하는데, 그건 비즈니스 모델이 잘못됐기 때문도 아니고, 젊은 대표가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도 아닌 경우가 많다”며 “같이 일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사람이 모인 뒤 청년 기업가들이 지역에 안착할 수 있도록 보다 정교한 정책이 뒷받침되면 자연스럽게 균형 발전이 이뤄질 거란 생각이다.

회사 브랜드 로고에도 그런 김씨의 철학이 담겨 있다. 고래가 한 마리 그려져 있고 ‘산으로 On(온) 고래’라고 적혀 있다. 그냥 고래가 아니다. 커다란 고래에 대항하기 위해 정어리들이 떼를 지어 만들어 낸 고래다. “우리 회사를 거쳐 간 직원도 험한 바다의 정어리라고 봐요. 개개인이 흩어져 있으면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지만, 고래가 접근하면 떼를 이뤄 그 고래보다 더 큰 고래 모양을 만들어 놀라게 하죠. 정어리도 뭉치면 못 할 게 없어요.” 지역 소멸과 싸울 '정어리'가 그의 손에서 하나씩 늘고 있다.

원주=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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