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 극히 일부 제외하고 '50년 만기 주담대' 막혀"

입력
2023.09.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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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가계대출 관리 대책' 발표
DSR 산정 '최장 40년'으로 제한
은퇴 후 소득 증명돼야 50년 대출
'스트레스DSR' 도입까지...대출 옥죄기
당국 "느슨한 은행 대출관행 바꿔야"

금융당국이 최근 두 달간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이유를 은행권의 무분별한 대출 관행 탓으로 돌리며 규제에 나섰다. 당장 올해 금융권 최대 '히트 상품'인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한도는 축소되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금융권 대출심사가 깐깐해진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대출 문도 거의 닫히면서 올 연말까지 대출 문턱은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이 사무처장은 "부동산 시장 회복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올해 7, 8월은 과도하게 늘어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이 기간 주요 은행들이 적극 취급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50년 만기 주담대' DSR 우회로 차단

7월부터 시중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두 달간 취급액만 6조7,000억 원에 달했다. 이 상품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해 대출 한도를 편법으로 늘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50년간 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는 차주임에도 은행이 한도를 늘려주려는 의도로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진단이다. 금감원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분석한 결과 차주의 57.1%는 40~50대였고, 60대 이상도 12.9%나 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느슨한 대출 행태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며 "최근 비정상적 가계대출 급증에는 은행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당장 이날부터 전 금융권에 공문을 내려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50년 동안 대출금을 갚더라도 한도를 산정할 때는 만기가 최대 40년인 것으로 가정하고 계산하라는 것으로, DSR 편법 우회로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자산소득이나 연금 등을 고려해 50년간 상환 능력이 입증되는 차주의 경우 한도를 추가로 늘릴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40대 이상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50년 만기 대출 길이 막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 요건 더 빡빡해진다... 특례보금자리론도 종료 수순

1단계 조치 효과를 감안해 이후로는 가계대출 관행 자체를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모든 금융사가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대출 상품을 디자인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당국은 '스트레스 DSR 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미 영국 등 해외에서 도입한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의 위험성까지 고려해 한도를 낮춰 잡는 방식이다. 예컨대 연소득 5,000만 원인 차주가 DSR 40%인 상황에서 50년 만기로 금리 4.5%에 주담대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에는 한도가 4억 원이지만 추후 금리가 5.5%까지 올라갈 것까지 고려해 계산하면 한도가 3억4,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면 그간 은행이 별 고민 없이 대출을 내줬다는 게 보인다"며 "앞으로는 은행이 차주 개개인의 특성을 감안해 실제 상환 능력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까다롭게 대출을 내주는 관행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자격 엄격히

소득에 관계없이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어 인기가 높던 특례보금자리론은 목표 공급액(39조6,000억 원) 대부분(89.4%) 소진된 만큼 일반형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달 27일부터는 ①부부 합산 소득 1억 원 이하 ②주택가격 6억 원 이하 ③무주택자라는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만 특례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서민·실수요자에게는 목표 공급액을 초과하더라도 내년 1월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결국 ‘대출 옥죄기’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1ㆍ3 대책으로 거의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고 대출금리 인하, 기준금리 인상 자제를 압박했던 정부가 다시 대출문턱을 크게 높이면서 시장에 혼선을 불렀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대출 급증은 50년 만기 주담대를 없애겠다는 당국 신호가 대출을 미리 받겠다는 수요를 자극한 탓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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