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재앙이라지만, 사실 ‘인간 행위’의 결과입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싱크탱크 사데크연구소의 아네스 엘 고마티는 리비아를 휩쓴 지중해성 폭풍 대니얼을 두고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사망자만 6,000명을 넘어선 리비아 대홍수 참사는 기후변화 피해뿐만 아니라 인재(人災)의 성격이 명확하다는 얘기였다. ‘무정부 상태’인 리비아에선 태풍에 대한 사전 대비는커녕 대피령조차 없었다. 또 20년 넘게 아무도 손보지 않았던 댐 2곳은 밀려드는 물을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붕괴했다.
리비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근 모로코의 강진에 이어, 인프라 부족으로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건 아프리카 전역의 민낯이다. 각국의 정치적 혼란은 재난을 더 키운다. 온실가스 배출엔 사실상 아무 책임도 없는 대륙이 기후변화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기후 불평등’의 아이러니다.
AP통신에 따르면 13일 리비아 동부 정부 관계자는 항구도시 데르나 지역에서만 이날 오전 6,000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수습된 시신도 2,000구 이상이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실종자도 1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종적인 인명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태풍 대니얼이 기후변화로 몸집이 커진 지중해 허리케인, 즉 ‘메디케인’ 상태로 지난 10일 리비아에 상륙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다고 짚었다. 태풍이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바다를 지나면서 위력이 강해져 많은 비를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풍이 앞서 튀르키예와 그리스를 거치며 희생자를 낸 만큼, 대비할 시간은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후, 동부와 서부로 갈라져 무력충돌과 정정불안이 이어지는 리비아에선 모든 기반 시설이 파손된 채 방치됐다고 WP는 지적했다.
상·하부 댐이 연이어 붕괴한 건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데르나시 관계자는 “무너진 댐은 2002년 이후 유지나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댐의 붕괴 위험 때 대피 경보도 없었다. 중동·북아프리카 환경정책연구원 말락 알타엡은 NYT에 “리비아는 기후변화 영향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기후 재난은 리비아 대홍수 참사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각국의 대응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상재해 조기 경보를 위해선 장기적 기후 데이터가 필요한데,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날씨 추적용 레이다 장비는 고작 37개뿐이다. 유럽과 북미는 각각 345개, 291개를 보유하고 있다. 당장 생계유지도 어려운 빈국들의 기상 인프라 투자는 ‘그림의 떡’이다.
영국 가디언은 “리비아도 기상 조건, 태풍 경로 등의 연구엔 손을 놓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에도 콩고와 르완다에서 홍수로 600명가량이 숨졌지만, 부족한 데이터 탓에 제대로 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태풍에 비해 예측이 어렵지만, 지난 8일 밤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한 모로코 역시 열악한 시설이 피해를 키웠다. 대다수 건물이 ‘내진 설계’가 무의미한 흙으로 지은 가옥이었기에, 지진 발생과 함께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잔해들이 폭삭 주저앉아 공기층 형성이 힘든 탓에 이제는 생존자가 있을 확률도 희박하다. 모로코 정부는 12일 기준 확인된 사망자가 2,901명이라고 발표했다. 부상자수는 전날의 두 배인 5,530명으로 파악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로코 정부는 국제사회의 원조 손길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