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박인제 감독 "500억 대작? '킹덤'보다 적어" [인터뷰]

입력
2023.09.14 15:46
디즈니플러스 '무빙' 박인제 감독 인터뷰
"500억 대작 부담감? 서사 압박이 더 컸다"
지적 장애 캐릭터 다루며 느낀 연출적 미숙함

드라마 '킹덤'과 '무빙'이 같은 연출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많은 드라마 팬들이 의아함을 던졌다. 선혈이 낭자하고 잔인한 장면으로 가득했던 '킹덤' 시리즈 연출가의 차기작이 따스하고 여운이 깊은 감성을 선사한 '무빙'이라는 사실은 적지 않은 반전이다. 이처럼 박인제 감독은 국내외 콘텐츠 팬들이 자신을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지난 12일 박인제 감독은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디즈니플러스 '무빙'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다.

이날 박인제 감독은 강풀 작가와의 작업에 대해 "작가가 이렇게 생각하는 걸 제시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게 연출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하기에는 좋은 의견을 최대한 잘 소화해서 만드는 것이 제 임무다. 작가가 아무런 비전 없이 하는 것보다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신인 감독이 아니기에 (강풀 작가가)제시한 대로 찍기보단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렸다. 오히려 고마웠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무빙'이 국내를 비롯해 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중이지만 정작 연출가인 본인은 무덤덤했다. 그는 지금의 인기를 두고 "찻잔 속의 태풍이다. '오징어게임' 정도는 되어야 세계적인 인기"라면서 인터뷰 시점 당시 다섯 편의 공개가 남았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했다.

'무빙'은 조인성 류승룡 류승범 한효주 김성균 박희순 등 워낙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이에 "봉준호 박찬욱도 못한 라인업"이라는 평가에 "'킹덤'도 나쁘지 않았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류승범의 캐스팅이 놀라웠다. 액션을 멋있게 하는 배우가 많지 않다"고 언급했다. 강풀 작가의 원작이 워낙 훌륭했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대본 단계에서 프랭크는 서양인이었다. 서양인을 캐스팅해서 액션스쿨에 보내서 멋진 무술을 구사하기엔 리스크가 컸다. 그런 배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말도 잘해야 했다. 차라리 입양이라는 설정으로 캐릭터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류승범이 어떨까 이야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소문이 무성했던 500억 제작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워낙 거액의 제작비가 투자된 만큼 부담감이 존재했냐고 묻자 박 감독은 "연출진이 생각할 부분이 아니었다. 저희는 '메이커'니 작품을 잘 만들면 잘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무빙'은 '킹덤'보다 회당 제작비가 적다. '택배기사' '수리남'보다 적다. 완성시킨 게 대단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감독이 우려했던 지점은 예산이나 경제적인 지점이 아닌 '긴 서사'였다. 최근 빠른 전개와 짧은 분량을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태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타 드라마와 달리 20부작이라는 긴 서사를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을지 고민이 컸고 압박감마저 느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시청자들을 위해 박 감독은 매 작품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채워나가는 중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실사와 CG(컴퓨터 그래픽) 구현에 대해 많은 공을 들였다. 예시로 극중 봉석이 나는 장면에서 봉석을 제외하는 모든 배경은 CG 효과가 입혀졌다. 박 감독은 '무빙'을 연출했던 마음 가짐을 두고 "20개의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무빙'을 비롯해 '킹덤' 등 박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점이 없다. 그가 새로운 것을 쫓는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찾았고 '무빙' 역시 한국에서 날아다니는 초능력자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단다. "제가 잘하는 것을 계속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 미숙한 감독이기에 신인감독이라고 생각하고 배울 만한 작품을 선택해요. 새로운 것을 한다. '킹덤'을 할 땐 조선미술사를 공부했고 '무빙'에서는 와이어, 액션, 후반 작업 등에 대해 연구했죠."

소수자의 일환인 지적장애 캐릭터 제만을 다루는 지점에서 여전히 미숙함을 느꼈다는 박 감독은 "각자의 경험, 사정이 있다.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배운 것을 또 다음 작품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돌아봤다. 유독 시니컬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 박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유독 가슴에 와닿는 장면이 있었다. 박 감독은 "7부 엔딩에서 봉석이 나는 장면은 사실 돈이 많이 들고 찍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것이 마치 제가 만드는 영화 같았다. 엎어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꿈이 있다. 자꾸 왜 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서툴게나마 날게 된다. 그 장면이 뭉클해서 마치 나 같았다"고 말해 긴 여운을 남겼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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