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4년 전 방러 때보다 느리게 이동한 이유는

입력
2023.09.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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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아닌 곳서 회담 가능성
4년 전과 다른 기착지 감안해 속도 조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동속도가 4년 전에 비해 확연히 느려졌다.

12일 북한 매체와 외신 등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을 태운 전용열차는 10일 오후 7시쯤 출발해 12일 오전 7시쯤에 하산에 도착했다. 약 36시간이 걸린 셈이다. 출발 시간은 일본 NHK가 12일자 노동신문의 김 위원장 출발 당시 사진을 분석한 결과 역 플랫폼에 설치된 시계가 오후 6시38분으로 표시돼 있었던 점을, 도착시간은 일본 민영방송 네트워크 JNN이 러시아 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시점을 반영했다. 평양에서 하산까지의 거리가 약 860㎞임을 감안할 때, 평균 이동속도는 시속 24㎞에 불과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과의 첫 정상회담을 위해 4년 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을 때에 비해 소요 시간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24일 새벽 평양을 출발해 같은 날 오전 10시 40분 하산에 도착해 환영행사를 가졌다. 자정 무렵에 출발했다 해도 당시엔 11시간가량 걸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동속도가 느려진 배경으로 4년 전 방러 때와 기착지가 바뀌어 운행 속도를 조절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4년 전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든 일정이 소화되는 단순한 여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더 먼 하바롭스크나 보스토치니에서 회담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운행시간을 여유 있게 설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르주에 위치한 보스토치니에는 우주기지가 위치해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 수행원 가운데 과학·경제를 담당하는 오수영 비서와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박태성 비서가 포함돼 있어 이번 회담에서 위성 분야 등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바롭스크는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과 2002년 방문한 장소로,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는 전투기와 군함 생산시설이 있다. 직선거리로 하바롭스크는 하산에서 북동쪽으로 754㎞, 보스토치니는 북쪽으로 1,056㎞ 떨어져 있다.

4년 전 하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이동속도가 시속 50㎞인 점을 감안하면 하바롭스크까지는 16~20시간, 보스토치니까지는 약 22~26시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특별열차가 이날 오전 8시에 하산을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13일 정오 무렵에는 하바롭스크나 보스토치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평양-하산 구간의 이동속도로는 13일에 예상 기착지에 당도하기 힘들다. 김 위원장이 푸틴과 만나는 일정을 고려해 열차의 속도를 조절했을 거란 예상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다른 요인으로는 열차나 철로의 노후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김 위원장의 현장 지도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탓에 관리가 부실했다는 가정에서다. 에너지난이 심각한 북한이 연료를 아끼기 위해 열차를 저속 운행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정은의 특별열차 이동에 최소 한 달 이상 사전 준비를 하기 때문에 열차나 선로의 노후화에 따른 속도 저하 가능성은 낮게 봤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