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무기 팔면 주저 없이 제재”… 미국의 최후통첩, 과연 먹힐까

입력
2023.09.12 16:40
3면
백악관 “약속 지켜라”... 국무부, 새 제재 시사
미 고위 관리 “북러 무기 거래 대화 최종 단계”
왕따에 구걸?... 전문가 “북의 지원, 러에 큰 힘”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를 저지하려 했던 미국의 시도는 일단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태운 열차는 12일 러시아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를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 측에 “추가 제재를 피하려면 지금이라도 단념하라”는 최후통첩까지 보냈으나, 이런 경고가 먹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1일(미국 시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한국일보 질의에 에이드리언 왓슨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는 공개 약속을 준수하기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까지 북한을 다그친 셈이다.

정보 흘려 김 빼고 엄포 놨지만 끝내 ‘허사’

국무부는 대북 제재 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면밀히 주시할 텐데, 북한에서 러시아로 가는 어떤 무기 이전도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러시아의 전쟁을 돕는 단체나 국가에 우리가 가해 온 공격적 제재를 계속 집행하고, 새로운 제재 부과에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러 무기 거래를 막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지난달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정상 간 서신 교환 등 북러 무기 거래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공개한 게 시작이었다. 통상 타국 관련 정보 공개는 ‘비밀이 노출됐으니 방침을 철회하라’는 메시지다. 이달 4일에는 북러 정상회담 계획까지 당사국 발표 전에 언론 보도로 알려졌고, 미 정부는 곧장 이미 파악된 정보임을 시인했다. 일부러 흘렸다는 뜻이다. 이후 NSC 당국자들은 “대가를 치를 것” “후과에 직면할 것” “실수하지 말라” 등 연일 엄포성 경고를 쏟아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평양에 눌러앉히지는 못했다. 이미 북러 간 협상이 막바지였던 탓이다. 정 박 미 국무부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부대표는 11일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쓸 많은 양, 여러 종류의 탄약과 방위산업에 사용될 원자재를 북한으로부터 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를 재확인한 뒤, “북러 간 무기 거래 대화의 최종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인 북한에까지 손을 벌렸다는 것 자체를 ‘제재의 효과’로 판단하고 있다. 밀러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국제적 ‘왕따’(북한)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국 영토를 가로지르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구걸”이라고 폄훼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10일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러시아의 자포자기 행위”라고 규정했다.

우크라 전쟁 장기화 동력… 칼자루는 러시아에

하지만 칼자루는 러시아가 잡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제재의 실효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이 상임이사국인 만큼,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크렘린궁은 12일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추가 제재 거부는 물론, 기존 제재 불이행 가능성까지 암시한 것이다.

반면 북한 무기는 러시아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북한이 구소련 설계에 기반한 수천만 발의 포탄과 로켓을 보유 중일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소개하며 “러시아가 분발할 경우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고, 서방 진영에 정전 협상 불가피론을 촉발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국들 사이에 균열을 낼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핵 기술의 북한 이전은 ‘핵 도미노’를 불러 동북아시아 정세를 요동치게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이 바라는 그림은 아니다. 당장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 맞불을 놓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제임스 제프리 전 NSC 부보좌관은 미국의소리(VOA)에 “한반도 핵무장은 인접국인 중국을 자극해 북중러 연대를 이완시킬 수 있는 조치”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