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규탄하지 않고 ‘절충적 표현’만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며 마무리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규정 문제를 둘러싸고 사실상 서방이 외교전에서 패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아프리카연합(AU)이 G20의 새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면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통칭)’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의 입지도 굳어지게 됐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G20 회원국들은 정상회의 첫날인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국제 식량, 에너지 안보, 공급망, 금융 안정성 등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강조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이 주장한 ‘러시아 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표현 대신, 전쟁 책임을 명확히 따지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만 표기한 것이다.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골이 깊어 공동선언 채택이 힘들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른 결과다.
외신들은 ‘서방 외교의 실패’라는 진단을 쏟아냈다. FT는 “이번 G20 선언은 지난 1년간 개도국들이 모스크바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도록 설득한 서방 국가들에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방송도 "우크라이나로선 ‘러시아의 침략’ 언급이 사라진 것과 관련, 전쟁의 성격 규정에 대한 외교전에서 서방이 패배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실제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구가 사용됐는데, 1년 만에 완화된 표현으로 대체된 꼴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불만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G20은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러시아는 “회의 참석자 절반이 서방의 서술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공동선언엔 ‘합의된 언어’가 사용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서방은 ‘타협의 산물’이라는 입장이다. 러시아 규탄을 빼는 대신, 흑해곡물협정 복귀를 촉구하거나 핵무기 사용 불가 방침을 재확인하는 등 실용적 성과를 도출했다는 이유에서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러시아에 흑해곡물협정 복귀를 요구하고,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유엔 헌장 원칙을 채택했다”며 “잘 된, 강력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을 절충한 결과로, 양쪽 모두 외교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아프리카의 G20 합류도 눈에 띄는 결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9일 개회 연설에서 “AU에 영구적인 정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회원국들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AU는 기존의 ‘초대된 국제기구’에서 G20 정회원 지위를 갖게 됐다. 지역 연합의 G20 회원국 합류는 유럽연합(EU)에 이어 두 번째다.
이틀 일정으로 열린 G20 정상회의는 10일 폐막했다. 공동선언문에는 세계 경제 전망과 기후변화 등 다른 글로벌 이슈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2026년 미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