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가해자들을 상습적으로 감형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더불어민주당 여성위원회가 8일 낸 논평 내용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 후보자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을 지적하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정말 이균용은 성폭력범 형량을 깎아 주길 반복하며 성범죄에 마냥 관대했던 판사였을까. 의혹을 통계로 증명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그가 서울고법 형사8부 재판장으로서 성폭력 전담 재판부를 담당했던 2020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처리한 전체 성폭력 범죄 85건을 분석했다. 이 중 비공개된 1건을 제외한 84건의 판결문을 전수 확보, 성범죄에 관한 '법관 이균용'의 의식을 들여다봤다.
이 후보자는 84건 중 77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77건의 유죄 중 1심과 같은 양형을 유지한 사건이 40건(51.9%)으로 가장 많았고, 감형이 32건(41.6%)으로 뒤를 이었다. 형량을 오히려 높인 사건은 5건(6.5%)이었다.
감형 32건 중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는 등 객관적 감형 사정 변경이 명백한 사건은 23건(피고인 25명)이었다. 이 중 △18명은 징역형을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받았고 △5명은 징역 기간 변경 △나머지 2명은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을 감형받았다.
무죄는 7건이었는데, 특히 이 후보자가 1심 유죄 판결을 뒤집은 건 3건이었다. 이 후보자는 "범죄일시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거나 "피해자 진술을 신빙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는데, 이 무죄 판결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피해자와의 합의 결과로 감형한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다수 대리한 적이 있는 문혜정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합의를 형량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피고인이 피해를 회복시키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처벌 불원 의사를 양형에 반영하는 것도 피해자를 존중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후보자 판결의 적정성을 논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사건은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했음에도 형량을 줄여 준 9건이다. 물론 비슷한 사건에서 들쭉날쭉 선고된 1심 형량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것은 역시 항소심의 기능이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1심 형량이 너무 세거나 너무 적은 '튀는 판결'의 경우 법적 안정성 관점에서 항소심이 형량을 바꿀 수 있다"며 "이 후보자의 판결도 그랬던 것 같고, 이를 그르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인정하더라도 합의(처벌 불원) 없이 유죄 사건의 11.7%(9건)를 감형해 준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폭력 사건은 다른 사건보다 더욱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이 후보자가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형 폭이 작지 않은 것도 문제다. 출소 8일 만에 13세 여학생을 강제로 추행하고 상해를 입힌 남성을 피해자의 엄벌 탄원에도 징역 18년에서 징역 15년으로 깎아 주는 등 이 후보자는 평균 23.25개월의 징역을 감형했다.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징역 7년이 선고된 사건을 징역 5년으로 감형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이 후보자가 감형 근거로 내세웠던 양형 사유에 주목한다. 양형의 이유가 피해자 사정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 중심'이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이 후보자는 20대 여성을 강제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남성에게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3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양형 사유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성실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입학하는 등 어느 정도 독립자존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만든 남성에 대해서는 "피해 아동이 먼저 접근했다"는 점을 참작사유로 보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성범죄자 형량을 높인 사례도 다수"라고 항변했지만, 그마저도 큰 효과가 없는 형량 상향이었다. 형량을 높인 5건을 보면 △징역 3년에서 징역 4년 6개월 △징역 8개월에서 징역 1년 6개월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3건은 다 징역형 집행유예를 다소 가중했을 뿐이었다. 성폭력 재판부를 맡은 적이 있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계적으로 양형을 균질화하면, 피해자와 피고인을 가장 많이 보면서 치열하게 고민한 1심의 판단이 무색해진다"며 "이 후보자가 성폭력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분은 아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을 다수 수임한 이은의 변호사는 "이 후보자에게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불쌍히 여기는 습관이 있었던 거 같다"며 "상습 감형은 아닐지라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하기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