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가 백두혈통 후계자에 한발 더 다가선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 9일 열린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다. 북한 군부는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김 위원장은 주석단에 나란히 앉아 주애의 위상에 힘을 실었다.
북한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주애는 김 위원장 바로 옆에 붙어 앉아 열병식을 지켜봤다. 열병식은 북한 내부 결속과 군사력 과시를 위한 주요 정치행사로, 주애가 주석단 특별석 정중앙에 앉은 것은 처음이다. 앞서 2월 8일 군창건 75주년 열병식 당시 주애는 모친 리설주, 당비서들과 함께 특별석 뒤편에 마련된 귀빈석에 자리했다. 통일부는 10일 "지난 2월 열병식과 비교했을 때 주애의 위치가 김정은 쪽으로 더 가까워져 예우가 격상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장면에서 군부 2인자인 박정천 원수가 무릎을 꿇은 채 주애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과 떨어져 주애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시멘트 운반차량에 방사포를 탑재한 '위장방사포' 열병종대가 열병식 행사장을 지나가는 순간 몸을 주애 쪽으로 틀었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애에게 경례한 뒤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북한 고위층이 김 위원장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여러 차례 확인됐지만, 주애를 상대로 이처럼 극진하게 대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건 전례가 없다.
주애의 표정이 이전보다 밝아진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주애의 모습을 분석한 결과 의전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표정 관리까지 훈련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주애의 공개 행보가 군 관련 행사에 쏠린 점도 특이하다. 노동신문 기준으로 주애는 그간 16차례 보도됐는데 첫 행사인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을 비롯해 13번이 군 행사였다. 군부에 대한 주애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주애가 김 위원장을 이을 '적통'인지를 놓고 해석은 아직 분분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주애를 대외적으로 노출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비록 직책은 없지만 군부 원수가 주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북한의 왕족 격인 '백두혈통'으로서 이미 주애가 김정은 다음가는 위상에 올랐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5성(별 다섯)에 해당하는 박정천이 무릎을 꿇은 대상은 주애가 아닌 김정은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주애는 열병식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조연에 불과할 뿐, 북한 사회주의 독재체제에서 가부장적 권위를 뒤엎고 여성이 리더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번 '민방위 무력 열병식'에는 방사포를 설치한 생수운반차와 덤프트럭, 대공무기를 장착한 트레일러를 끄는 트랙터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형 무기가 아닌 민방위 전력 중심의 열병식에서 주애를 전면에 부각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