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원종의 범행을 다룬 기사엔 어김없이 이런 식의 댓글이 붙었다. 최씨는 조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고 2015~2020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대전 고교 교사 피습 사건의 피의자인 20대 남성도 2021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최근 여러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조현병 병력이 속속 밝혀지자, 사회적으로 '조현병 환자가 잔인한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는 것 아니냐'는 편견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정말 조현병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고 있을까? 답은 '그렇게 볼 수 없다'이다. 한국일보는 △조현병 및 조현성 장애가 범죄 원인이 된 사례와 관련 통계의 분석을 통해, △조현병 관련 범죄에 어떤 특성이 있으며 △그 대책은 무엇일지를 점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환 범죄자는 9,875명으로 전체 범죄자 125만330명 중 0.7%를 차지했다. 강력범죄(살인 등)자로 좁혀도 비율은 전체 2.2%에 불과했다.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을 뚜렷한 수치상 근거는 없는 셈이다. 중앙대 심리서비스대학원 논문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정신질환 유병률은 4.5%이고, 정신질환자의 범죄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33.7명이다. 비정신질환자의 범죄 발생률(68.2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만 발생률이 적다고 무작정 위험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문제는 재범률. 2018년 경찰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률은 65%로 전체 범죄자 재범률(47%)보다 높았다. 동기가 해소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는 일반 범죄와 달리, 정신질환자의 경우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재범으로 갈 가능성이 확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는 뚜렷한 패턴이 나타난다. ①조현병의 주요 증상인 망상·환청이 범행을 유발했고, ②치료를 중단한 경우 특히 위험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한국일보는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살인 △정신감정 △심신미약 등의 키워드 통해 추출된 최근 2년(2021년 9월 2일~2023년 9월 2일)간의 1심 판결문을 분석했다. 이 중 살인 또는 살인미수 혐의(존속살해 및 존속살해미수 포함)로 기소된 45건을 보면, 재판부가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한 사건은 30건이었고 이 중 27건(90%)이 조현병 또는 조현성 장애로 진단·추정된 경우다.
압도적으로 조현병, 조현성 장애 환자의 심신미약이 많은 이유는 망상과 환청이 타 질환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망상의 본질은 현실과 다른 생각이나 신념을 고집한다는 점. 지속된 이상증세로 판단력이 흐려져 범죄로 이어졌고, 법원도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식이다. 망상 및 환청이 직접적 범행 동기로 명시된 경우는 27건 중 절반이 넘는 14건이었다.
병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사고 흐름도 엿볼 수 있다. 2015년 조현병 진단을 받고 6년간 치료를 받은 한 피고인은 어느 날 갑자기 "사탄의 피를 엘리베이터 앞에 뿌리라"는 환청을 들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탄 60대 남성을 사탄이라 생각한 피고인은 집에 있던 칼을 들고 남성에게 달려들어 죽이려고 했다. 이외에도 "부모가 나를 팔아넘긴다"거나 "엄마 때문에 원하는 사람과 사귈 수 없다"는 식의 망상이 범행 동기가 됐다.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명확했다. 망상·환청으로 인한 살인살인미수 사건 27건 중 17건에서 자의적 약물 중단 등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사례가 나타났다. 2007년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한 피고인은 2020년 의료법 개정으로 약 대리처방 기준이 엄격해지자 복약을 중단했다. 약을 끊은지 1년이 지난 뒤 그는 "약을 먹고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한 말에 격분해 아버지를 가위로 찔렀다. 조현병 권위자인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약을 임의로 끊으면 1, 2년 내 재발할 확률이 80%나 된다"며 "꾸준한 약물치료가 조현병 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약물 끊은 조현병은 '노브레이크 자동차'... 악마의 환청과 싸우는 사람들)
조현병이나 조현성 장애로 진단받으면 쉽게 '심신미약 감경'(형법 제10조 2항)을 받는다는 인식은 오해에 가깝다.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서현역 칼부림' 피의자 최원종이 범행 전 '심신미약 감경'을 검색한 사실이 알려지자 "최씨가 처벌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공분이 일었다.
하지만 조현병이나 조현성 장애가 있어도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으려면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했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일례로 한 편의점주는 직원을 죽이려다 실패한 뒤 정신감정에서 조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았다. 하지만 정신감정의가 "사물 변별 능력은 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해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심신미약 판별'이 정신질환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게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한다. 동기 없이 재범을 하는 이들에겐 처벌보다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 치료감호 등 조치가 필요한 이들을 걸러내 관리하면 재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국립법무병원(정신질환·약물중독·성폭력범죄자 등 전문치료기관)에서 230건 넘는 정신감정을 맡았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엄벌하겠다고 교도소에 무작정 가둬두면 (환자들은) 증상이 심해진 채 출소하게 된다"며 "범죄 원인이 '질병'이라면 해결책은 '치료'"라고 강조했다.
대책으로 지금 논의되는 건 사법입원제다. 사법입원제는 자신·타인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법원이 강제입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18년 기준 강제입원의 88%가 보호자에 의해 이뤄지는 '보호입원'일 정도로, 지금의 부담은 전적으로 보호자에 지워져 있다.
이처럼 문제를 풀려면 강제입원도 필요는 하다. 그러나 모든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입원시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들을 관리할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현병은 발병 초기 치료에 따라 병의 장기적 회복 예후가 결정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로선 (중증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사고가 난 후에야 강제입원 등의 조치로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애초에 진찰 및 상태 평가를 의무화해 초반 급성기 치료를 쉽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