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그리고 고운 손. 눈길이 가는 외모의 남자 둘이 옆집으로 이사 왔다. 그런데 새 이웃은 낮에는 커튼을 친 집에 꼼짝 않고 밤에만 다닌다. 우연히 마주쳐 말이라도 걸면 알 수 없는 외국어를 하는데, 알고 보니 루마니아어다. 진짜 뱀파이어(흡혈귀) 이웃이 생긴 걸까.
2021년 12월부터 카카오웹툰 연재를 시작한 조금산 작가의 '옆집 이방인'에서는 시작부터 스산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남자 둘이 비 오는 날 밤늦게 이사를 한 것부터가 수상쩍다. 여고생 '하령'이 이들의 정체를 의심하면서도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은 흡인력이 넘친다. 그들의 사연을 한 꺼풀씩 벗겨 가는 추리물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인간의 폭력성과 탐욕에 대한 회의와 분노를 느끼게 되지만 연민과 사랑의 감정도 조금씩 스민다.
웹툰의 배경은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 한 작은 도시다. 엄마와 여동생 등 셋이 사는 하령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꿋꿋이 살고 있다. 하령을 괴롭히던 무리가 집 근처까지 와서 폭력을 행사하려던 어느 날 밤, 지나가던 옆집 아들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본의 아니게' 도움을 주면서 두 인물의 서사가 시작된다. 서로에게 오해가 쌓였다가 풀리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한 발자국씩 가까워진다.
어둡고 공포스러운 느낌은 뱀파이어로 의심되는 옆집 남자들 때문은 아니다. 다분히 현실적인 공간도 공포감을 더한다. 폭력이 일상이 되지만 누구도 막아 주지 않는 학교, 재개발로 인생 역전을 꿈꾸며 달려드는 이와 반대로 터전을 지키려는 이가 뒤엉킨 동네. 일상 안에서 마주치는 탐욕과 불안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입이 얼마나 무서운지 넌 아직 몰라." 옆집에 사는 아빠가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말이 와닿는다.
작가 특유의 분위기는 캐릭터에서 살아난다. 예컨대 당차면서도 솔직한 하령은 심각한 문제들에 부딪혀도 예상을 뒤엎는 반응을 보여 통쾌함을 선사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에게 "나는 너한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쏘아붙이고, 그런 자신을 놀리는 게 재미의 전부인 그를 향해 "니가 불쌍해진다"고 통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뱀파이어라는 정체, 살인·실종 범죄와의 연관성 등을 의심하며 자신에게 접근하면서 하령에게 똑부러지게 한마디 하는 옆집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니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넘겨짚어서 떠들어대고 괴롭히고" 하는 왕따를 당하는 하령에게 "니가 지금 나한테 하는 짓하고 뭐가 다르냐"고 되묻는다. 이런 성격은 둘의 '케미'(호흡)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게 한다.
탄탄한 그림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한다. 특히 인물의 눈동자를 표현하는 작가만의 방식은 인물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을 탁월하게 전달한다. 주로 밤이나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삼아 어두운 색상이 가득 찬 컷 속에서, 강한 명암 대비로 그려진 장면 곳곳이 배치돼 몰입감을 준다. 마지막 순간 이들이 어떤 이웃으로 서로에게 남게 될지, 진짜 위험한 존재는 누구일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