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좋겠니"...숨진 중1 딸 SNS는 알고 있었다

입력
2023.09.10 07:00
9월 10일 20회 '세계 자살예방의 날'
지난해 중학생 딸 잃은 어머니 인터뷰
"트위터 가입 4개월 만...섬뜩한 정보공유"
"초등 4, 5학년도...손 놓으면 더 어려져"
정부 규제 없고, 자살방조 적용도 어려워


“장례식장에서 딸이 주고받은 트위터 다이렉트메시지(DM)를 처음 봤어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어요. ‘잡히면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는 혼절했어요.”
지난해 딸을 잃은 최민선씨

최민선(가명·49)씨는 지난해 12월 중학교 1학년 딸(13)을 잃었다. 겨우 열세 살, 그 어린아이가 죽음에 이른 과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앞두고 본보와 인터뷰 한 최씨는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손 쓰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아이들은 점점 어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위터 가입 4개월 만...사망 암시글에 "좋아요"

최씨의 딸은 사망 전 한 20대 초반 여성과 몇 달간 트위터(현 '엑스') 다이렉트메시지(DM)를 주고받았다. 사망하던 날도 딸은 그에게 DM을 보냈다. 딸이 전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하자 그는 “ㅋㅋ그걸로는 절대 안 죽어”라고 답했다. 그리고 '성공'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줬다. 딸은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잘 지내"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딸은 그가 알려준 방법대로 세상을 떠났다. 열세 살 아이가 혼자 생각했다고 보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딸이 트위터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이었다. 딸은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았던 지난해 9월 처음 트위터에 가입했다. 트위터를 사용한 적이 없는 최씨는 딸의 가입한 줄 몰랐다. 트위터에서 딸과 소식을 주고받은 아이들이 올린 게시물에는 모두 자해나 자살 관련 해시태그(#)가 달려있었다.

우울을 공통분모로 한 이들이 공유한 건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다. 딸은 트위터에 '내가 죽으면 좋겠니'라는 질문과 함께 '네' '아니요'를 답하는 투표를 올린 적이 있었다. '네'를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딸이 사망 당일 올린 암시 글은 200명 넘게 읽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이 글에 '좋아요'를 누른 이도 있었다. 소름 끼치는 세계였다.

최씨는 절규했다. “딸이 ‘힘들다, 죽고 싶다’고 할 때 ‘들어줄게, 말해봐’라고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그 세계에선 ‘어른’이라며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고요. 앞으로 살 날이 너무 많다고, 네가 안 해본 게 훨씬 더 많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죽음 공유하는 아이들..."초등 4, 5학년도 있어"

트위터에서 딸의 흔적을 찾을수록 참담했다. 어른이 봐도 눈이 질끈 감기는 사진과 영상이 버젓이 돌아다녔다. 구체적인 자해 방법 등 섬뜩한 정보들도 세세하게 공유했다. 무엇보다, 자해와 자살을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이 위험한 곳에 어린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딸 또래 중·고등학생이거나 그보다 어렸다.

“딸과 트위터로 소통한 아이들 중에는 초등학교 4, 5학년도 있었어요. 수천 명의 아이들이 다 죽고 싶다고 하고, 자해하고, 피가 철철 나는 그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교복을 입었을 때 안 보이게 하려면 어디에 자해를 해야 하는지, 어떤 흉기를 쓰는지 등 끔찍한 정보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고 있어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딸이 트위터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에게 먼저 연락해 잘 달래보려 애썼다. 간간이 소식을 주고 받던 아이는 지난 여름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가 부모에게 안전하게 인계됐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최근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절대 우리 딸처럼 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타일렀는데, 갑자기 카톡과 SNS 등 모든 연락을 다 차단했어요. 너무 불안해요."

우리나라는 전체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청소년 자살만 가파르게 늘고 있다.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자살한 초·중·고등학생 수는 822명이다. 지난해 자살한 학생 수는 193명으로 5년 전인 2018년(144명)보다 34%나 늘었다. 같은 기간 초등학생은 3명에서 11명이 됐다.

우울증갤러리, SNS 규제 없어..."아이들 어서 구해야"

최씨는 적지 않은 아이들의 죽음이 SNS와 연관돼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고층빌딩에서 SNS 라이브 방송을 켠 채 투신한 10대 사건이 처음 보도됐을 때도 문제를 직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했던 그 학생은 '동반 자살할 사람 구한다'는 글을 올린 20대를 만난 후 홀로 투신했다.

SNS로 인한 청소년 사망 우려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미디어가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며 "인터넷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별다른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않은 채 자살을 자극하고 유도하는 것은 귀중한 생명을 죽이는 잔혹한 악행"이라고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 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우울증갤러리가 자살 조장과 방조, 성착취의 온상임이 드러나 폐쇄 요구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과잉 규제'라며 제재하지 않았다. 유해 게시물 차단에 미온적인 건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운영사들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를 처벌하기도 어렵다. 최씨는 딸과 DM을 주고받았던 20대 여성을 고소하려다 포기했다. "경찰이 이런 SNS 대화로는 자살방조죄 적용이 어렵다고 했어요. 사망 장소에 같이 있었다는 점 등을 밝히지 않으면 자살방조 혐의 인정이 안 된다고요. 너무 허무했어요."

힘겹게 인터뷰에 응한 최씨는 거듭 강조했다. "아이들은 부모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이 이런 정보 속에 들어가 있어요. 부모와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렇게 떠나는 아이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질 거예요. 우리 아이는 그렇게 갔지만, 앞으로는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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