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재명의 단식… 민주 파괴에 저항? 사법 리스크 방탄?

입력
2023.09.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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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민주주의 파괴에 저항"… "명분 없다" 지적도
국민의힘 "사법 리스크 방탄"… 이정현 단식 회자
시기, 명분 충족시 '성공한 단식'… 당내 '퇴로' 고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로 단식 열흘째를 맞는다. 단식은 정치적 명분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며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정치행위다. 국민적 공감을 얻을 경우 정치인의 중요한 자산이, 반대의 경우에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항거"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반면 '사법 리스크 방탄'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과거 정치인들은 어떠했을까.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이 대표 단식의 정치적 함의를 짚어봤다.


"민주주의 파괴 저항… YS와 유사해"

통상 단식은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전제로 한다. 지방자치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건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동시대 국민들의 정치적 열망과 들어맞아야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대표 단식은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저항과 항거를 명분으로 삼았다. 그런 뜻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야당 시절 단식에 빗댄다. YS는 가택연금 상태이던 1983년 23일간 단식에 나섰다. △민주화 투쟁 구속 인사 석방 △정치활동규제법 철폐 △해직 교수·제적 학생 복직·복교 △언론 자유 보장 △개헌 등이 광범위하게 나열됐다. 전두환 정권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단식 12일 차에 전두환 정권이 '가택연금 해제'를 제안하며 회유했다. 그래도 YS는 단식을 풀지 않았다. 초점이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YS는 회고록에서 "전두환 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민주화운동은 질식상태에 놓여 있었다"며 "국민에게는 보다 빨리 자유가 와야 했고, 그러려면 독재자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저항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강조한 단식 이유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권이 야당 대표가 굶어서 죽든 말든 무슨 관심이 있겠나"라며 "국민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윤 정부를 향해 △민주주의 훼손 대국민 사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 등을 요구했다. 이것 또한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하지만 YS 단식과 형식만 유사할 뿐이다. 168석 거대 야당의 대표와 군사독재 시절 탄압받은 정치인을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단식의 시점과 처한 정치적 환경, 정당성, 국민 호응 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YS의 단식은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라며 "민주주의 회복 열망이 굉장히 강했던 그때와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그만한 명분이 축적돼야 하는데, 다소 갑작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부결용… 이정현 떠올라"

국민의힘과 민주당 내 비이재명(비명)계는 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탄용' 단식이라는 입장이다. 극단적 대여 투쟁을 통해 당을 단합시키고,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비해 부결 기류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지적이다. 한 비명계 의원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대표가 9일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단식이란 게 명확한 목적과 조건을 갖고 하는 건데, 이 대표는 방탄이 목적이다 보니 단식부터 하고 조건을 찾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단식을 방탄 용도로 이용한 이정현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사례가 함께 거론된다. 20대 국회 출범 초기인 2016년 9월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자 새누리당은 반발해 당론으로 국정감사를 보이콧했다. 이 전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주장하며 일주일간 단식에 돌입했다. 하지만 단식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자의 국감 증인 채택 등을 막기 위한 쇼라는 단식의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DJ처럼 성공하려면… 시기 명분 등 충족돼야

정치권에선 '지방자치제' 도입을 이뤄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1990년 단식을 성공 케이스로 평가한다. 야합이란 비판을 받았던 3당 합당,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사건이 계기가 됐다. 또한 지방자치제는 군부 독재와 대척점에 놓인 정치 이슈였다. 국민들이 '저항'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했다.

특히 DJ가 지방자치제에 일관된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받지도 않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DJ의 단식은 시기나 명분 모두 국민적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지만, 이 대표의 경우 본인도 목적이나 속성을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여론 추이를 살펴 퇴로를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전으로 흐르면서 퇴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7일 KBS 라디오에서 "'그게 윤석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냐, 자기를 방탄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란 이야기들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면서 "이 대표 스스로 단식을 푸는 결단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1특검(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4국조(양평고속도로, 새만금 잼버리 파행, 방송 장악, 오송 참사) 가운데 일부라도 여당과 협상하는 선에서 출구전략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1특검·4국조 요구에 어림없다는 입장이어서 틈새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 관계자는 "결국 병원에 실려가는 것 외엔 단식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