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기오염은 취약계층에 더 타격… 아시아 기후 비상 선포해야

입력
2023.09.0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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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명 위협하는 잿빛 하늘
유럽 기후 연구소 전문가 인터뷰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지구촌의 환경 재난은 빈국과 빈자에게 더 가혹하다. 대기오염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공기를 얻는 데 돈을 쓸 여력이 없거나, 먹고살기 위해 잿빛 하늘 아래에서 하루 종일 일했던 사람은 더 큰 고통을 겪는 법이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라우리 밀리비르타 수석연구원과 스톡홀름환경연구소(SEI) 다이앤 아처 동남아시아 전문 선임연구원은 한국일보 화상 인터뷰에서 “대기오염은 불평등하다”고 입을 모았다. 두 전문가에게 동남아시아 대기오염 상황과 해결 방법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동남아 지역 대기오염의 영향은.

밀리비르타=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깨끗한 도시에 사는 것을 선호한다. 오염된 하늘은 부동산 가격 하락, 재능 있는 노동자 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성도 낮아진다. 본인 또는 자녀 등이 천식, 하기도 감염 같은 호흡기 질환을 겪으며 자주 병가를 쓰게 되는 탓이다. 배 속 아기마저 피해를 입는다. 임신부가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조산, 저체중아 출산 위험이 높아진다.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남아 국가 시민들의 기대 수명은 대기오염 노출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1~2년 단축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가 같은 어려움을 겪나.

아처=아니다. 대기오염 피해는 사회적 위치, 빈부 격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집이나 사무실에 공기청정기를 두거나 오토바이가 아닌 차를 이용한다. 오염원에 노출될 일이 많지 않다. 반면 건설노동자나 거리 청소부, 오토바이 운전사, 노점상 등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직격탄을 맞는다. 이들 중엔 비정규직이거나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러운 공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잿빛 하늘 아래로 나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염 상황 개선 가능성은.

밀리비르타=동남아 지역에선 당장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 유럽, 멕시코뿐만 아니라, 한때 극심한 대기오염을 보였던 중국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으로 많은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동남아 주요 도시들은 오염 수준이 과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 확인도 불투명하다. 한국이나 유럽연합(EU) 회원국 등은 모든 발전소나 산업시설에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같은 오염 물질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동남아 국가들은 아니다. ‘깜깜이’ 상태다.

-대기오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밀리비르타=하루빨리 청정 에너지 발전과 전기자동차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만 이를 달성하는 데까진 시간이 걸리므로 앞으로 20여 년간은 지금처럼 석탄화력발전소 이용이 불가피하다. 기존 발전소 내 오염 물질 배출 제어 장치 설치를 병행해야 한다.

아처=아시아 도시들이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징적이긴 해도 비상사태 선언은 기후 행동에 절실히 필요한 긴박감을 심어준다. 동남아의 경우, 대기오염에 적극 대응하려는 각국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지역사회 활동을 촉진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대응 필요성은?

아처=대기오염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국에서 발생한 화재와 그에 따른 연무 피해 영향이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에까지 미친다. 하늘에는 국경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개별 국가를 넘어, 아세안 차원의 조치가 필수다. 위성데이터 공유 등 지역 차원의 모니터링, 녹색 기술 등 효과적인 지식 공유를 통해 각국이 손을 맞잡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밀리비르타=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EU처럼 아세안 전역에 걸친 대기질 표준과 규제도 만들어지면 좋을 것이다. 조화로운 표준이 있다면 동남아 국가들의 대기오염 대응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비용도 낮출 수 있다.

글·사진= 허경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