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단식은 생명을 걸고 하는 극한의 투쟁이다.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의미는 물론, 주장하던 요구사항이 관철되거나 소통의 접점이 열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국면대전환'을 위한 돌파구가 되는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
이 대표는 단식투쟁을 선언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히며 "윤석열 정권은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윤석열 정권을 직격했다.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파괴···. 역사책 속 과거 독재시대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게 하지만, 놀랍게도 윤 정부의 독단과 폭주는 선명한 실체다. 대통령의 폭력적 일방통행이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절반이 넘는 국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고 분노하는 상황에도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겨냥해 '1+1=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며 조롱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충격적이다. 이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단 한 번도 항의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일본이 채워준다던 물컵의 반은 이제 오염수로 채워지는 것인가. 일본을 향해 제대로 비판도 항의도 하지 못했으면서,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우려를 민주당의 거짓선동 탓이라고 몰아간다.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심지어 최근 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이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며 분노했다. 지금 화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이런 대통령을 지켜보는 국민들이다.
내 또래 20대의 윤 대통령 평가가 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랜 친구는 "대통령이 한가해 보인다"고 했다. 도대체 "홍범도 장군 지우기는 갑자기 왜 하는 거냐. 대통령은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 개미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축소에 대해 ,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안 했으면 세금 아낄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이 대표 단식투쟁 선포 전날인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상황 속 제1야당 대표는 온몸을 던지는 결정을 한 셈이다.
윤 정권의 횡포가 쌓여가며, 이 대표의 단식투쟁 명분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 대표 역시 '투쟁하는 정치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홀로 고립되는 단식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가는 투쟁이어야 한다. 이 대표 메시지가 지지층 결집을 넘어 당의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2030세대에겐 밥을 '못'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익숙한 세상이다. 잉여 생산이 늘면서 젊은 세대의 삶이 전체적으로 풍요로워진 덕분이다. 물질적 풍요를 보편적으로 누리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단식이라는 단어는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 조절' 혹은 '종교적 이유' 등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치적 의견 표출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것을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힘들다.
문민정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단식투쟁은 군사정권 시절 야권 인사들의 최후 저항수단이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고, 개인적 신변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던 엄혹한 시대였다. 결국 정치적 약자가 대의명분 관철을 위해 목숨을 걸고 했던 마지막 선택이었다. 1983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단식투쟁이 대표적이다. 정권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었고, 지금 젊은 세대가 상상할 수 없지만 김 총재는 신군부로부터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 물리적 행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김 총재는 반민주주의에 대한 최후 저항 수단으로 단식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에도 여러 정치인들은 '김영삼의 길'을 꿈꾸며 단식을 선언한 바 있지만, 대체로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웠고 오히려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다 거창했고 자기 진영의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국민 다수는 그저 개인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정치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뜬금없이 단식을 선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국민항쟁'이라고 포장했지만, 지금은 반민주적인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야당 대표가 '가택연금' 같은 물리적 탄압을 받는 상황도 아니다. 공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맥락 없이 단식을 선택한 것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있다.
결국 이 대표의 단식은 정치지도자로서 대의명분 투쟁보다는 이 대표 개인의 사법적·정치적 이해관계를 풀기 위한 도구로 해석될 수 있다. 국민을 위해서 단식 투쟁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개인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대표의 진짜 목적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검찰의 피의자 소환조사는 계속해서 무산되고 있다. 단식 기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야당 의원들의 온정주의가 작동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위기에 직면했던 이 대표의 리더십과 친명·비명의 권력 투쟁도 당분간은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치 전반을 놓고 살펴보면 민생을 다뤄야 할 정기국회에서 국민을 인질로 삼는 단식투쟁에 정치 혐오감이 커지는 국민이 늘어날 것이다. 명분 없는 정치 수단으로 전락한 단식투쟁은 중단돼야 한다. 이 대표는 과거 정치인들의 단식을 "땡깡(생떼)"이라고 비유한 적 있다. 이제 이 대표가 그 땡깡을 스스로 멈추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