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공원 ‘기억의 터’에 설치된 민중미술가 임옥상씨의 작품 2점이 결국 철거됐다.
서울시는 5일 오전 6시부터 중장비를 동원해 임씨가 참여한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조형물 철거를 완료했다. 당초 전날 철거를 시도했으나 ‘기억의 터’ 설립 추진위원회와 정의기억연대 등이 공원을 지키며 강하게 반발해 하루 미뤄졌다. 이날 철거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임씨가 직원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시립 시설 5곳에 있는 임씨 작품 철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억의 터’ 설립 추진위원회는 “수많은 추진위원과 여성 작가들, 모금에 참여한 시민 1만9,754명의 집단 창작물”이라며 반대했다. ‘기억의 터’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명단,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그림,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씨의 그림 등이 새겨져 있다.
반면 서울시는 “전쟁 성범죄 피해로 평생을 고통받아 온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공간에 성추행 유죄 판결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존치하는 것은 위안부를 모욕하는 일이고 국민 정서에도 반하는 일”이라며 철거를 강행했다. ‘기억의 터’ 조성 당시 관계자 및 전문가의 제안과 공공미술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조형물이 철거된 자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조형물은 사라졌지만 서울시와 시민단체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거 작업이 마무리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성추행을 인정한 작가의 작품 철거를 막아섰다”며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많은 시민단체가 같은 사안을 두고도 ‘우리편’이 하면 허물을 감싸주고 ‘상대편’이 하면 무자비한 비판의 날을 들이댄다”며 “진영 논리가 아닌 상식과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한 61개 여성단체와 ‘기억의 터’ 추진위원 98명도 공동 성명을 내고 서울시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임옥상 성추행 사건을 통해 만연한 여성 폭력의 현실을 드러내고, 범죄 이후 그의 파렴치한 행보까지 모두 기록하는 방안을 찾자고 하였으나 서울시는 무시하고 기습 철거를 강행했다”며 “여성 폭력의 역사를 공적 공간에서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까지 지워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성추행 범죄에 대해 반성이 없는 임씨 행보로 더 큰 상처를 받았을 성폭력 피해자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