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가깝고도 먼’ 안성, ‘6차 산업’이 청년을 기다린다

입력
2023.09.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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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포스텍 ISDS 공동기획 
[지방 청년 실종 : 5회 안성]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안성은 서울에서 가깝고도 먼 고장이다. 경부ㆍ중부ㆍ평택-제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서울에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농심 롯데칠성 등 식품 대기업과 KCC 같은 건축자재 대기업 공장들이 줄이어 들어서 있고, 서울과 수도권을 겨냥한 과수 채소 등 농사도 활발하다. 반면 철도가 지나지 않아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오가려면 불편하고 먼 곳이다. 안성의 이런 입지가 청년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지만, 발상의 전환만 이뤄진다면 안성 청년을 머물게 하고 한발 더 나아가 수도권 청년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너무 거대해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블랙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지방 중소 도시가 지속 가능하려면 서울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안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잘 갖춰진 도로망 덕분에 서울이라는 거대 시장과 왕래가 쉬운 동시에, 서울로 출퇴근이 어려운 만큼 서울 주변 수많은 중소 도시가 베드타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자족적인 도시로 발달할 여지도 갖추고 있다.

20대에 이사 왔다, 30대에 떠나는 고장

안성에서 4년째 버섯과 포도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이태형씨는 “서울 가락시장은 물론 대전과도 가까워 농산물 판로가 넓다”라고 말한다. 중앙대 다빈치캠퍼스 재학생 김세실씨는 “서울에 사는 학생들도 통학이 어려워 안성에 거주하는 비중이 통학생보다 많다”며 “안성에 거주하면서 저렴한 집값 생활환경에 만족해 졸업 후에도 안성에 거주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안성은 청년을 끌어당길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안성 인구변동을 살펴보자. 현재 19만 명 수준인 안성의 인구 변동 추이를 2015년부터 작년까지 살펴보면 약 7,000명이 증가했는데 특히 2019년부터 3년간 많이 증가했다. 수도권과 고속도로로 빠르게 연결되면서 수도권 시장을 겨냥한 공장 증가 등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20ㆍ30대 청년 인구는 4,700명 감소했다. 세분해 들여다보면 안성의 청년 실종 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주로 안성 지역 대학생의 비중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은 1만1,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은 2015년 9,600명 수준에서 2022년 1만 1,500명으로 증가했다. 2000년대 들어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운 공도읍, 미양면, 서운면 일대에 대기업 공장들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인구증가를 이끌고 있다. 반면 30대는 급감 추세다. 30대 초반은 2015년 1만3,000명 선에서 2020년 1만 명 선이 무너진 후 감소가 멈춰 현재 1만 명을 조금 넘어선 수준이다. 30대 후반은 2018년까지 1만4,000명을 유지하다 빠르게 감소해 현재는 1만1,000명 수준까지 줄었다.

안성의 대학교와 일자리가 20대 이후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있으나, 가정을 꾸리게 되는 30대 이후에는 자녀 교육과 생활 편의 시설 부족 등으로 평택 등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안심영역’은 양호하지만 ‘만족영역’은 낙후

안성의 안심영역과 만족영역 지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안성과 인구가 비슷한 경기 구리시와 비교했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서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가 포함된다. 노동 인구와 일자리 개수의 비율로 측정한 일자리 지수에서 안성(0.76)은 구리(0.48)보다 크게 앞서고 있다. 또 생활안전과 치안 등을 고려한 안전지수는 안성(0.8)이 구리(0.6)는 물론 서울(0.4)보다도 양호하다. 의료와 환경 지수는 별 차이가 없었다. 안성은 일자리 상황이 양호하고 안전한 도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긴밀한 요소들을 측정하는 만족영역에서는 서울은 물론 구리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인구당 대규모 쇼핑센터, 문화시설, 학원 등 교육시설 숫자를 비교해 보면 쇼핑은 구리와 비슷하고 문화시설은 2배 이상 많다. 하지만 학원 같은 교육 시설은 크게 부족하다. 이를 면적을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안성이 구리에 17배에 달하기 때문에 주민 접근성이 구리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면적 기준 만족지표를 보면 쇼핑 시설의 경우 안성은 0.018로 서울(1.382) 구리(0.27)와 비교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사설 학원도 안성이 0.424로 서울(23.825) 구리(11.621)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30대가 안성을 떠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치다.

도농 조화로 ‘6차 산업’ 첨단 농업 잠재력 커

청년들이 안성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을 정도로 경기도 지역 내에서는 주택 가격이 낮다는 점이다. 구리와 비교에 매매와 전세 모두 3분의 1 수준이며, 경기도 평균 가격의 절반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런 도시가 일자리 형편도 양호하다.

성장 잠재력이 큰 첨단 농업에 도전하려는 청년 농부들에게도 최적의 입지다. 요즘 1차 산업인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 가공인 2차 산업, 그리고 유통 판매, 문화, 체험, 관광 등 3차 산업을 연계한 ‘6차 산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안성은 ‘6차 산업’이 싹을 틔울 수 있는 최적지다. 안성 내 농산물 유통센터는 5개로 경기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벼, 채소, 과수, 축산 등 농업 전 분야에서 1ㆍ2위를 다툴 만큼 농업 경쟁력도 탄탄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청년이 많다. 넓은 농지와 숲 등 여유로운 전원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싶은 청년 예술인들도 ‘6차 산업’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특히 각종 농업 지원 정책이 ‘전업농 육성’이란 낡은 고정관념에 묶여 있어, 농업과 다른 산업 간의 융복합을 가로막고 있다. 농업 외 소득이 연간 3,700만 원이 넘으면 농민수당 등 각종 농민 혜택을 중단하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농민의 부업을 막기 위해 4대 보험이 포함된 기업 취업은 1년에 3개월로 제약하는 규제도 있다. 농민을 농토에만 묶어 놓으려는 이런 규제가 ‘6차 산업’의 선도자가 되려는 젊은이의 도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위한 지원 정책의 수립도 중요하지만,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역적 특성과 변화된 환경에 부합하는 세심한 고려가 청년 유입과 정착에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료정리 : 박세윤, 이민구(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