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읍시다"…라미란, 여성들에게 출산 장려한 이유 [인터뷰]

입력
2023.09.06 19:15
배우 라미란, 티빙 '잔혹한 인턴' 인터뷰
"임신과 출산으로 공백기 겪었지만 추천"  
후배들 롤모델 된 라미란, 소회는

배우 라미란의 강점은 생활밀착형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보는 이들이 인물의 감정을 쉽게 따라가고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배우여도 어려운 일이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라미란은 본지와 만나 티빙 '잔혹한 인턴'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잔혹한 인턴'은 7년 공백을 깨고 인턴으로 컴백한 고해라(라미란)가 성공한 동기 최지원(엄지원)에게 은밀하고 잔혹한 제안을 받으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사회생활 만렙 경력의 경험치로 불태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작품은 경력 단절 여성의 애환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공감을 크게 샀다. 극중 라미란은 7년간 잊고 지냈던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인턴 생활을 시작하는 고해라 역으로 분했다. 시청자들은 라미란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진정성 느껴지는 연기로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워킹맘으로서 가정과 일,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밝고 씩씩하게 이겨내고자 애쓰는 해라의 모습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날 라미란 역시 주변 반응들 중 공감한다는 말이 가장 인상깊었다면서 "촬영하면서도 너무 드라마틱하거나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에 밋밋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이야기 같다더라"고 말했다.

한상재 감독은 라미란에게 '잔혹한 인턴'을 제안했고 대본을 건넸다. 라미란은 평범한 사회 생활을 겪어보지 않아 자신과 어울리지 않으리라고 판단했지만 한 감독의 긴 회유와 설득으로 임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라미란 역시 이야기에 깊게 공감했다. 그 역시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연기적인 공백기를 가졌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공백을 갖고 연기를 다시 할 때 어깨가 말려들어갔어요. 연극을 하다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복귀를 하게 됐는데 낯선 환경에서 다른 결의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해라는 경력이 있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열정을 느끼지만 나는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고단한 순간에도 라미란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았단다. 이유를 묻자 "(누군가에게) 의지한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가 해내야 하는 일이다. 작품에 대한 결과는 만드는 사람들이 책임질 것이고 저는 최선을 다한다. 제 연기를 제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지금도 그렇다. 오롯이 시청자들의 평가나 피드백으로 판단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그에게도 배우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임신이 걸림돌이 됐던 순간이 있었다. 라미란은 "결혼을 하고 오디션을 봤는데 1차 합격을 했다. 그때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제작사에 이야기를 했는데 한 관계자가 '낳으실 거냐'고 물어봤다. 안 낳을 것 아니냐는 뉘앙스였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참 기분이 나빴다"고 돌아봤다.

아이를 낳고 공백기를 갖는 동안 라미란은 끝없는 불안감을 느꼈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내가 무대에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2년을 그렇게 고민했습니다. 자의로 떠났지만 타의에 의해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죠."

라미란이 그때 그 시간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선 것처럼 극중 해라 역시 땅을 딛고 우뚝 일어서는 인물이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한껏 발버둥 치는 이 주인공의 서사가 시청자들의 응원을 자아내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라미란은 결혼과 출산을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라미란은 "아직 시집을 안 간 친구들에게 애부터 낳으라고 한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안 쓰냐. 거기서 오는 다른 인생이 너무 재밌다. 다른 삶이 펼쳐진다. 거지 같든 너무 행복한 꽃길이든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을 놓치지 마라. 여러분, 애부터 낳자"고 목소리를 높여 웃음을 자아냈다.

다작과 흥행의 아이콘인 라미란은 수많은 후배들이 바라보는 롤모델이 됐다. 최근 '더 글로리' '경이로운 소문' '마스크걸'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염혜란은 스스로를 두고 "제2의 라미란이 되려면 멀었다"고 언급할 정도다. 이를 두고 라미란은 "제1의 염혜란이 되어야지. (염혜란이)아주 좋은 작품을 잘 만나서 너무 좋다"면서 "지금 잘 될 사람들이 줄줄이 있기에 위기 의식을 느낀다. 도망갈 데도 없는데 먹이사슬에서 먹히는 거다.(웃음) 오래 가는 게 힘들다. 저는 그래도 오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라미란은 스스로 한계를 느낀다면서도 대중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 "한 작품을 책임지는 배우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친근하고 오래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목표를 전했다.

한편 라미란이 출연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잔혹한 인턴'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티빙에서 공개된다.

우다빈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