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에 내는 출연·출자금 대부분을 한국은행이 대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을 우회한 꼼수임은 물론,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마이너스통장(마통)'처럼 써 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은과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0여 년간 한은이 정부 대신 납부한 국제금융기구 출연·출자금은 총 12조6,832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출연·출자금의 92% 수준이다. 이 기간 정부가 낸 돈은 1조947억 원에 불과하다.
홍 의원실은 "한은이 대납한 돈은 외환보유고에서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대납금액 규모는 연평균 0.08%에 불과하나, 2016년엔 2.05%로 뛰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IMF 쿼터(각국의 경제력에 따른 출자 할당액)가 증액된 결과이나, IMF 쿼터 자체는 외환보유액에 포함돼 유출액이 늘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출자금을 예산에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현행법 규정(국제금융기구에의 가입조치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예산에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한은이 대납하게 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근거로 대납을 요청해 왔다는 입장이다.
홍 의원실은 그러나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 외환보유고를 사용하는 '꼼수 관행'"으로 "한은의 독립성 보장에도 어긋난다"고 본다. 의원실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취임 전인 2019년 "정부의 안일한 지출 관행이다. 법 취지에 어긋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사실도 근거로 들었다.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3개월 만에 감소 전환했다. 이날 한은에 따르면 8월 외환보유액은 전월 대비 35억 달러 감소한 4,183억 달러로 집계됐다. 미국 시장금리 상승 및 부동산발 중국 침체 우려에 미 달러 가치가 전월 대비 1.5% 상승,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가치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환율이 널뛰는 현상을 잡기 위해 외환당국이 시장에 달러화를 푼 것도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스와프를 맺은 국민연금에 달러를 제공한 것도 일시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