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증강 연쇄반응은 '핵'만의 이야기일까

입력
2023.09.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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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모든 폭탄의 아버지(FOAB)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핵군축 합의와 97년 유엔 화학무기금지조약 등 국제적 대량살상무기 규제 이후에도 동서 군비 경쟁은 멈춘 적이 없었다. 핵군축 이면에는 미국이 83년 수립한 인공위성을 활용한 ‘스타워즈 계획’이 있었고, 살상력을 극대화한 재래식 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2002년 미 공군이 착수한 ‘BLU-82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결과물이 ‘모든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란 별명의 ‘GBU-42’ 항공열압폭탄이다. 지상 3m 높이에서 폭발하도록 고안된 9.5톤 무게의 MOAB는 TNT 11톤 규모의 폭발력으로 질산염 등 엄청난 양의 가연성 물질을 확산시켜 반경 150m 이내를 무산소 상태로 초토화하는 위력을 지녔다. MOAB는 2017년 ISIS 거점 아프가니스탄 낭가르하르주 터널지대에 실제로 투하돼, 당시 대통령 트럼프의 표현에 따르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모든 폭탄의 아버지(FOAB)’는 러시아가 2007년 9월 11일 실험에 성공한 MOAB 대항 폭탄. 작동 원리가 MOAB와 거의 같은 FOAB는 길이 7m에 7.1톤으로 MOAB보다 작고 가볍지만, 러시아 당국 발표에 따르면 폭발 반경과 파괴력은 약 300m에 TNT 44톤의 위력으로 MOAB를 압도한다.

FOAB의 실제 위력을 두고 서방 전문가 중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실험 영상을 분석한 일부 전문가는 FOAB가 투폴레프 폭격기(Tu-160)에 탑재된 게 아니라 대형 화물기에 실려 기체 뒤편 화물 게이트를 통해 투하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는 FOAB를 세계 최강 비핵폭탄으로 평가한다. 다행히 FOAB는 아직 실전에서 위력을 선보인 적이 없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는 핵 경쟁의 연쇄반응을 우려했지만, 그건 핵에 국한된 아포칼립스는 아닐 것이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