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그림자금융’ 위기 재연

입력
2023.09.0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의 진원지는 태국이었다. 80년대 후반 이래 아시아에는 국제 금융자본이 세계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왕성하게 유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이른바 ‘중심지역’ 안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NICs)들에 이어, 중국과 동남아 후발 개도국들까지 산업화 과정에 본격 진입하면서 아시아에서 막대한 자금 수요가 발생했다. 90년 210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제 민간자금의 아시아 유입액은 94년도에 750억 달러로 급팽창했다.

▦ 90년대는 ‘세계화’의 시기였다. 미국 주도로 자유무역과 자본의 국경 없는 이동을 위한 각국의 조치들이 잇달았다. 태국도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바트화 고정환율을 채택하면서 글로벌자본이 물밀듯이 유입됐다. 하지만 이 자본이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대거 유입되어 거대한 경제 거품을 형성했다. 거품 붕괴를 방지하려고 95년 12월부터 태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들어가자 거품에 가려졌던 치부가 드러나면서 여기저기서 붕괴가 시작됐다.

▦ 부동산시장에 한파가 몰아치자 대규모 아파트와 오피스빌딩, 골프리조트 개발에 돈을 쏟아부은 부동산개발회사들이 하나둘 부도 위기에 빠져들었다. 위기는 곧 부동산개발회사들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한 금융사들로 전이됐다. 97년 3월 당시 태국 최대의 파이낸스사였던 ‘파이낸스원’이 마침내 무너졌다. 그러자 위기는 채권 채무 사슬을 타고 태국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됐고, 그 틈을 탄 글로벌 헤지펀드 등의 바트화 공격으로 태국 경제가 좌초하면서 금융·외환위기가 아시아 전역을 휩쓸게 된 것이다.

▦ 부동산 위기가 금융부문으로 이전되며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태국식 패턴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2008년 미국의 ‘리먼사태’에서도 반복됐다. 비슷한 위기 패턴이 최근 중국에서 다시 전개되고 있다. 유력 부동산개발회사 헝다에 이어 최대 업체인 비구이위안까지 부도 상황에 몰리면서 최근엔 부동산 그림자금융 간판 업체로 꼽히는 ‘중룽국제신탁’이 파산 위기를 맞는 등 부동산 위기의 금융 전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과거 태국과 지금 중국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재앙은 늘 예기치 않게 닥치는 법. 누가 상황을 낙관할 수 있겠는가.

장인철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