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30대 간호사가 병원 출근 직후 ‘뇌동맥류 파열’로 쓰러진 후 숨지는 일이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국내 최대 병원에서 생긴 일이기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뇌동맥류(腦動脈瘤ㆍcerebral aneurysm)’는 뇌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기에 ‘머리 속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권정택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중앙대병원장·신경외과 교수)은 “뇌동맥류는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어 알아채기 어려워 건강검진 등으로 대부분 발견된다”며 “이들 질환은 골든타임 내 치료하면 예후(치료 경과)가 좋지만 예방이 우선이다”라고 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지 않은 상태(미파열 뇌동맥류)는 성인 1~ 2%에게서 발견될 정도로 비교적 흔하다. 뇌동맥류 환자의 50%가 40~60대 여성이다. 따라서 고혈압ㆍ가족력이 있거나, 40대 이상 여성이라면 정기적으로 뇌혈관 컴퓨터단층촬영(뇌 CTA) 또는 뇌 자기공명영상(뇌 MRA) 등으로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뇌동맥류가 파열되지 않았을 때는 대개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크기가 1.5㎝ 이상이라면 주변 뇌 조직이나 뇌신경을 압박해 두통·시력장애·시야장애·눈꺼풀 처짐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뇌동맥류가 파열될 위험이 매우 높기에 재빨리 적극적인 치료(클립결찰술, 코일색전술)를 받아야 한다.
뇌동맥류가 터지면 뇌와 척수 사이에 거미줄처럼 생긴 공간(지주막 아래)에 혈액이 스며들어(지주막하(蜘蛛膜下) 출혈)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신승훈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10~15% 정도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하거나 뇌압 상승으로 뇌사 상태로 빠져 적극적인 치료가 불가능해지고, 20~30% 정도는 치료 도중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고 했다.
뇌동맥류는 뇌동맥류 크기·위치·모양·나이 등을 고려해 개두술을 통한 ‘클립결찰술(aneurysmal neck clipping·수술)’이나 혈관을 통해 접근해 치료하는 ‘코일색전술(coil embolization·시술)’로 치료한다.
클립결찰술은 뇌동맥류 치료에 오랫동안 시행돼 온 방법이어서 기술적으로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다.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을 작게 열어 수술 현미경을 통해 뇌동맥류를 노출해 동맥류 입구를 클립으로 묶어 혈류를 차단하는 치료법이다.
코일색전술은 두개골을 절개하지 않고 뇌동맥류를 치료하는 비침습적 시술법으로 허벅지 대퇴동맥을 통해 여러 단계의 카테터(catheterㆍ도관)를 사용해 뇌동맥에 접근한 뒤 뇌동맥류에 백금 코일을 채워 혈류를 차단해 뇌동맥류 파열을 막는 방법이다. 뇌동맥류 입구가 넓으면 혈관 내 스텐트나 풍선을 이용해 입구를 지지하고 코일색전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코일색전술은 시술 시간도 2~3시간 이내로 비교적 짧으며, 치료 후 1~2일 이내에 퇴원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코일색전술은 클립결찰술(수술)보다 재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통계적으로 10명 중 1명은 다시 치료해야 하기에 클립결찰술보다 재발 확인을 위해 시술 후 자주 추적 검사해야 하는 게 단점이다.
실제 뇌동맥류로 인한 코일색전술 시술 후 6개월, 1년 6개월, 3년 6개월, 5년 6개월에 추적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치료 시 스텐트 보조하에 코일색전술을 시행했다면 최소한 6개월에서 1~2년 정도 항혈소판제를 복용해야 한다.
뇌동맥류 파열이 발생했을 때 클립결찰술(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146명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신경외과 의사 3,025명(6월 기준)의 5% 정도다(대한신경외과학회, 전국 89개 수련 병원 조사 결과).
클립결찰술(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병원당 1.68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60대 이상이 24명이나 된다. 코일색전술(시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00여 명, 수술과 시술 둘 다 가능한 전문의는 150여 명이다.
권정택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은 “신경외과 수련병원 89곳 가운데 클립결찰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1명밖에 없어 뇌혈관계 수술 전문의가 1년 내내 응급수술을 하는 곳도 있어 뇌혈관 전문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클립결찰술(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는 의료 수가가 낮은 데다 밤낮없이 이뤄지는 응급 수술인 데다 수술 후 각종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높아 의대생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권정택 이사장은 “신경외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는 적지 않지만 신경외과 내에서는 응급 수술 없는 척추 질환을 선호하고 응급을 많이 다루는 뇌혈관 전문 쪽에는 극소수가 지망하는 게 현실이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