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분야를 대폭 삭감한 데 대해 과학계가 반발하는 가운데 연구자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과학계 단체들이 집단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현장 연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졸속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공공연구노조) 등 10여 개 과학단체 대표는 1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R&D 예산 삭감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공공연구노조 제안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노조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 노조,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 등의 대표와 관계자 25명이 참석해 3시간 가까이 의견을 나눴다.
회동에선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한 것과 관련해 신랄한 비판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주요 R&D 예산( 21조5,000억 원) 삭감폭을 전년 대비 13.9%라고 밝힌 것과 달리, 현장에서 체감하는 감소폭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제동국 ETRI 노조위원장은 "총액만 따지면 삭감폭이 10%대라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연구에 투입되는 비용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연구비가 실제로는 30~80% 가까이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들이 나왔고 이럴 경우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운복 공공연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출연연의 정부 출연금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R&D 예산이 줄어들면서 출연연이 따내는 외부 수탁과제도 줄어들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수탁과제를 따내야 하는 경쟁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위원장은 "예산 삭감의 배경으로 연구자들의 카르텔, 나눠먹기식 예산 배분을 지적하고 있지만 R&D 예산의 문제점은 오히려 관료 중심의 하향식 예산 배정이었다"면서 "이런 문제를 지적해온 현장 목소리는 묵살한 채 이제 와서 현장 연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체 대표자들은 5일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예산 삭감 문제점을 공론화할 예정이며 R&D 예산 삭감과 제도 혁신을 논의할 공동대책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