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전자는 지난해 7월 취임식 때, 후자는 지난달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 앞에서 밝힌 것이다. 경제 화두가 '가계 빚 부담'에서 '가계부채 증가'로 180도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은행의 '이자장사'를 힐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난해 금리인상기를 맞아 시중은행이 이자수익을 바탕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자, "국민은 빚에 허덕이는데, 은행은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까지, 관(官)의 고금리 지적 때마다 은행은 경쟁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렸고, 빚 부담을 줄이는 '상생금융'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타깃은 가계부채로 옮겨왔다. 정부도 한국은행도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증가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4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총 681조3,000억 원으로 4개월 연속 늘었다. 그동안 1조 원 미만에 머물던 증가폭도 2조 원대로 2배 뛰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가계대출 오·남용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만기가 길수록 대출 가능 금액이 커진다는 점에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우회 수단이 된 것은 아닌지 △인터넷전문은행이 대출 요건을 꼼꼼하게 따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이후 50년 주담대는 "DSR 산정 때 만기를 40년으로 간주하겠다"는 대책이 나왔고, 인터넷은행들은 금리를 올리며 대출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고작 5개월 만의 격세지감이다.
정부 당국 책임론도 나온다. 50년 주담대는 윤 대통령 '대출 규제 완화' 공약에서 비롯됐고, 한은이 정책 대출 특례보금자리론을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주담대가 부채 증가를 견인한다는 점에서, 부동산시장 연착륙 정책이 유탄이 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말 발표한 감세 정책으로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집값을 자극하고 있다. 다시 DSR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더했다.
당국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 미분양 가구의 급증, 고금리 충격에 따른 고정금리 대출 확충 필요성,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던 역전세 리스크를 떠올려 보라"며 "당국 정책으로 경착륙이 연착륙으로 전환한 측면이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