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은 진출입이 자유롭다는 면에서는 프리랜서에 가깝지만, 플랫폼이 노동 과정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자 성격도 가지고 있다.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다는 공통적 양상 때문에 편의상 '플랫폼 노동자'로 묶일 뿐 개별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이나 직업적 정체성은 업종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동정책은 세심한 맞춤형 정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일보와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올해 6월 엠브레인리퍼블릭에 의뢰해 플랫폼 노동자 300명을 설문조사하면서 이들의 직업적 정체성을 알아봤다. 응답자의 '노동자 인식'과 '프리랜서 인식'을 각각 3개 문항으로 측정하고, 어느 쪽 인식의 측정값(문항당 0~100점) 합계가 높은지를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4.3%는 '프리랜서 유형', 16.0%는 '임금노동자 유형'으로 분류됐고, 나머지 19.7%는 두 정체성을 고루 갖춘 '혼합 유형'이었다. 직업적 정체성 인식은 업종별로 뚜렷이 갈려 과외·레슨·상담, 문서작성·번역·코딩은 프리랜서 유형, 음식배달·심부름·퀵은 임금노동자 유형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프리랜서 유형 노동자들이 자신을 프리랜서에 가깝다고 여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일을 한다'(72.3점)는 점이었다. 플랫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원하면 바로 그만둘 수 있어 일반 근로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감 선택이나 자율성이 높다'(70.5점) '플랫폼 업체의 일부 일감을 수행하기 때문'(67.1점) 문항에도 긍정 응답률이 높았다.
반면 임금노동자 유형은 관련 인식을 측정하는 문항, '플랫폼 업체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75.5점), '플랫폼 업체로부터 보수를 받아 생활하기 때문'(75.0점), '플랫폼 업체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기 때문'(73.4점)을 긍정하는 답변이 많았다. 프리랜서 유형은 각 문항별 점수가 42.6점, 39.0점, 36.8점에 그쳤다.
자연스럽게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 양측이 엇갈렸다. 스스로를 임금노동자에 가깝다고 여길 때 플랫폼 업체나 알고리즘, 인공지능(AI)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감이나 작업량 배분에 대해 임금노동자 유형의 41.7%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지만, 프리랜서 유형은 26.9%만 이에 동의했다. 업체에 의한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도 임금노동자(29.2%)가 프리랜서(23%)보다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에 더 많이 공감했다.
필요로 하는 정책 또한 크게 달랐다. 프리랜서 유형은 ①플랫폼 업체의 과도한 수수료(중개료) 규제 ②공정거래를 위한 표준 계약서 의무 적용 ③플랫폼 종사자 세무 및 법률 상담 지원 순으로 중요하다고 꼽았지만, 임금노동자 유형의 우선순위는 ③ ① ② 순이었다. 임금노동자 유형은 이외에도 △최소 휴가 및 휴가비 지원 △고용 및 산재보험 가입과 보험료 지원 등을 요구했다.
플랫폼 노동자 사이에 이 같은 '동상이몽'이 커질수록 힘의 균형은 플랫폼 기업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각자 흩어져 서로를 모르는 채로 일한다는 점에서 협상력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같은 사업장 내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해 업무환경 개선, 권리의식 증진을 꾀하던 기존의 노동운동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들은 같은 플랫폼에서 일감을 두고 경쟁하는 처지라 동질감이 더욱 약화하기 쉽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처음에 자율성이 높다는 장점을 보고 이 일에 뛰어드는데, 점차 기업이 정보와 알고리즘을 불투명하게 독점하면서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어진다"라며 "현재로서는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를 이용만 하고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니만큼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시장의 약자가 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