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은 '가족 단위 이민자 수'가 지난달 사상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법적 이민 경로를 늘려 불법 이민 억제를 꾀했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선 상당히 곤혹스럽게 됐다. 반대로 반(反)이민을 외쳐 온 공화당은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도 이민 정책은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은 뒤 미 국경순찰대(USBP)에 체포된 가족 단위 불법 이민자는 최소 9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다였던 2019년 5월의 8만4,486명보다 6,500명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합법 이민'을 장려해 온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 덕분에 지난 5, 6월 급감했던 전체 불법 이민자 수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6월 9만9,539명이었으나, 7월엔 13만2,652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달엔 17만7,000명에 달했다. 두 달 연속 3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까지 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 제한 조치를 철회한 바이든 대통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삼아 불법 입국자를 즉시 추방했던 이른바 '42호' 정책이 지난 5월 종료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합법적 이민 경로를 확대했다. 이민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예컨대 정치적 핍박 등을 이유로 내건 망명 신청자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출시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당 절차를 입국 전 밟아야 한다. 하루 최대 1,450명의 사전 예약이 가능하다. 이전엔 일단 국경을 넘은 후 난민 신청을 하고 수년간 보호시설 등에 머물면서 취업과 교육 기회를 보장받아 왔다. 밀수업자에게 목숨을 맡긴 채 수천 달러를 지불하더라도 일단 국경을 넘고 보자는 밀입국 시도가 성행했던 이유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출신 이민 신청자에 대해선 재정 후원자가 있고, 신원 조회를 통과한 3만 명가량을 매달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합법적 서류 없이 국경을 넘을 경우, 즉시 추방하고 5년간 재입국을 금지하는 강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 같은 '바이든표' 이민 정책은 공화당의 공격을 받아 왔다. 텍사스·플로리다 등 보수 성향의 21개 주는 지난 2월 "바이든 행정부의 월권이자 위법 행위"라며 시행 중단 요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텍사스주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개시됐다.
진보 진영 일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등 인권단체들은 "미국 땅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입국 경로와 관계없이 망명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한 이민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 7월 승소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항소한 상태다.
바이든표 이민 정책이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사이, 민주당 소속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뉴욕에 도착한 이민 신청자들의 취업 허가를 신속히 처리해 달라"고 연방정부에 촉구했다. 현재 시의 보호 아래 있는 6만 명을 더 이상 수용할 여력이 없는 탓이다. 뉴욕시는 이들을 위해 200여 개 보호소와 50억 달러(약 6조 원) 예산을 투입했다. 지난해부터 텍사스 등 국경 지대의 남부 주들이 민주당 소속 시장이 있는 뉴욕, 워싱턴 등으로 망명 신청자를 '밀어낸' 결과다. WP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민 문제는 내년 대선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