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군이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들어온 독립군을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독립군 부대원들이 사살당한 사건인 '자유시 참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당시 독립군 학살에 책임이 있고 소련 공산당 가입 경력도 있다며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있는 장군 동상 이전을 추진하면서 며칠 동안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다. 현대사 연구자들도 해석이 분분한 사건인데, 새로운 사료 제시도 없이 반세기 전에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을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한 육사의 자신감이 의아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에 힘을 얻었는지 육사는 압도적 반대 여론에도 계획 발표 엿새 만에 흉상 이전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역사전쟁'의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든 모습이 된 셈이다. 기시감을 느낀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에 느닷없이 ‘건국’을 언급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일들이 그렇다.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그리고 있는 역사의 상(像)인 ‘공산세력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확립’을 중심에 둔 현대사에 대한 집착이 보수정부의 DNA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윤석열 정부가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도 그렇게 봐야 이해가 된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설계한 보수정부의 사안(史眼)은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공’에 방점을 찍는다.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고 보는 관점에 가깝다.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는 축소되고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한이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시대라면, 주류(主流)를 자처해 온 보수세력이 이런 역사해석을 내세워도 이해할 구석이 있다. 하지만 경제력은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정치·사회적 민주화 등 모든 분야에서 남북 체제 경쟁이 끝난 지금 ‘승리의 역사’를 그리기 위해 무리하게 역사전쟁을 벌이는 건 사회적 에너지 낭비다. 당면한 국내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역사문제를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국민의 편을 갈라 결국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식의 역사전쟁은 소모적일 뿐 아니라 퇴행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서구열강 같은 제국주의적 근대화가 아니라 식민지를 거쳐 근대화의 경로에 들어선 나라다. 식민지 경험으로 훼손당했던 민족적 정체성의 복원은 역사적 과제다. 복원되는 정체성 구성의 중심에 독립운동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독립운동의 전모를 이념적 편향 없이 평가하는 건 먼 훗날의 통일을 생각한다면 긴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이외 모든 독립운동의 성과를 삭제해 버린 북한보다 훨씬 우월하고 당당하다. 우파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민주화 이후 상당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복권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다원성과 개방성 덕택이다.
우리의 체제를 위협한 전비(前非)도 없고 그저 민족해방의 도구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식민지 시기의 독립운동가들마저 역사전쟁의 이름으로 소거하고 현재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소모한다면 불행도 이런 불행은 없다. 관대함과 관용이야말로 보수가 자랑해온 미덕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