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부채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메스를 꺼내들었다. 대출 한도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만기와 차이를 두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50년 만기 주담대로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전날 카카오뱅크·NH농협은행·수협은행·KB국민은행·하나은행 등의 대출담당 임원과 은행연합회 관계자 등을 불러 가계대출 관련 회의를 열었다. 최근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많이 취급한 은행들로 알려졌다.
올해 초 출시된 50년 만기 주담대는 최근 가계부채 급증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환 기간이 길수록 DSR 한도가 확대돼 기존 주담대보다 더 많이 대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10일 1조2,380억 원에서 22일 2조4,800억 원으로 12일 만에 2배 넘게 불었다.
당국이 꺼내든 해법은 'DSR 만기 조정'이다. 50년 주담대 만기는 유지하되, DSR 산정 때 만기를 40년으로 간주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50년 만기 주담대의 DSR 한도가 현행 대비 줄어들고 대출 규모도 그에 맞춰 감소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은행권의 의견을 요청했다.
DSR 만기 조정은 전례를 차용했다. 과거엔 오피스텔 등 비주택담보대출의 DSR 만기는 실제 대출 만기와 무관하게 일괄 8년으로 고정됐다. 30년 만기 담보대출을 받았더라도 DSR 만기가 8년인 탓에 실제 대출 규모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DSR 만기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정책적 상황, 상품 특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실제 대출 만기와 다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다주택자 대출, 집단대출과 관련해서도 금융당국의 경고성 메시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대출 역시 가계부채를 급등시킨 원인이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10월 말까지 개별 은행의 가계대출 현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은행권의 대출 관리가 느슨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금감원의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보다 부채 경감을 위한 근본 방안을 수립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50년 만기 주담대 조이기'는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목이라지만, 일각에서는 섣부른 정부 정책의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청년층·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며 도입된 상품인데,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꼽히면서 출시된 지 채 1년도 안 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50년 만기 상품이 포함된 주택금융공사의 특례보금자리론 대출금리가 두 달 연속 인상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초부터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거 거두고 은행권을 향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부동산 매수심리를 부채질했던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