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최대 도박조직 총책 2년 만에 강제송환... 1조3000억 가로채

입력
2023.08.31 12:02
필리핀 형사절차 악용, 송환 피해

필리핀에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1조3,0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한국인 조직 총책이 국내로 압송됐다. 경찰과 국가정보원, 외교부 등이 2년간 추적해 이룬 결실이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전날 오전 5시 필리핀 마닐라에서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개설·운영한 조직총책 A(44)씨를 국내로 강제송환했다. A씨는 2021년 9월 경찰에 검거됐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과 경찰주재관, 필리핀 경찰 및 이민청 등 30여 명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으로 신병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체포 당시 그의 저택에서는 마이바흐 등 고가의 외제차량 10대와 명품 가방 등 호화생활을 짐작케 할 만한 사치품이 다수 발견됐다.

하지만 국내 송환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A씨가 필리핀 현지 형사절차를 악용해 2년 가까이 강제송환을 피한 것이다. 그는 필리핀 이민국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내면서 형사사건이 진행될 경우 재판 종결 전까지 송환되지 않는 점을 활용해 허위 사건을 현지 경찰에 접수하는 식으로 필리핀에 계속 머물렀다.

경찰은 대사관을 통해 필리핀 법무부 측에 A씨의 수법을 알리는 한편 조기송환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부터는 필리핀 경찰 주재관과 코리안데스크 담당관이 법무부 측과 매주 실무회의를 열어 송환 방식을 조율했다.

A씨는 끝까지 꼼수를 부렸다. 양국 공조로 필리핀 법무부가 이달 18일 그의 추방을 결정했지만, 일주일 뒤 다시 한 번 허위 사건을 현지 수사기관에 접수한 것이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호송팀을 현지에 급파하고 이상화 주필리핀 대사를 통해 추방 결정을 철회한 필리핀 법무부에 재차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결국 송환 예정 시간 5시간 전에야 추방이 최종 결정됐다.

경찰은 국내 조직원 166명을 검거하고 이미 송환한 필리핀 현지 조직원 16명을 수사 중이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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