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가 비면서 혼란을 겪었던 KT가 새로운 수장으로 김영섭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9개월 동안 리더십 공백을 겪었던 만큼 김 대표는 빠른 시간에 조직 정상화와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KT가 30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2023년도 제2차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김영섭 대표이사 후보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뽑았다. 김 대표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약 2년 7개월 동안 KT CEO로서 업무를 맡게 됐다.
지난해부터 구현모 전 대표,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이 차기 대표에 도전했다가 국민연금과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물러나면서 KT는 큰 내홍을 겪어왔다. 이에 KT는 대표를 선임하는 이사회부터 주주 추천을 통해 새롭게 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대표 선임 전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7.99%)과 외국인 주주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 및 ISS가 찬성 입장을 보인 만큼 이날 주총도 별다른 잡음 없이 21분 만에 모든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 신임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KT그룹이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기술력, 사업 역량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대표는 LG 전신인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해 지난해 LG CNS 대표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LG계열에만 몸담아온 'LG맨'이다. LG유플러스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 통신업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LG CNS를 이끌면서 디지털 전환(DX) 사업에서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재무통'인 만큼 KT 대표에 취임 후 재무구조 효율화, 대규모 구조조정 등 쇄신책을 꺼내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김 대표는 지난달 대표 후보자가 된 뒤 광화문 본사로 출근하면서 각 조직장들과 업무 보고를 통해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업무 보고 중 '위인설관(爲人設官)'이란 고사성어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위인설관이란 꼭 필요한 직책이나 벼슬이 아닌데 총애하는 누군가에게 벼슬을 주기 위해 필요 없는 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KT는 경영 공백으로 2023년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하지 못했다. 그룹 50여 개 계열사 인사도 멈춰있다.
기업의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 통신업이란 한계에서 벗어나 DX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KT의 현 상황을 감안해 공격적 인재 영입과 함께 아직 남아있는 낡은 공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는 정치권에서 비판받은 '내부 카르텔' 문제나 낙하산 인사, 허수 경영 등 여러 현안도 풀어야 한다. 이에 따라 하반기 중 대대적 조직 개편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KT 경기 성남시 분당사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도 임직원에게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뛰어난 역량이 있으면 핵심 인재로 우대하겠다"면서 "숫자를 만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기보다는 사업의 본질을 단단히 하고 미래 성장의 에너지를 쌓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