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시들시들', 과도한 가지치기, 밑동 잘려 '휑'… 가로수 수난시대

입력
2023.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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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메타세쿼이아, 황화·조기낙엽 증상
공사 등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베어지기도
"기후 반영한 가로수 관리 방안 마련 필요"

24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양재천 메타세쿼이아길. 영동2교와 영동6교 사이 양재천로 2.9㎞를 따라 이어진 길에 ‘메타세쿼이아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치료 중’이란 안내 문구가 걸려 있었다. 산책 나온 시민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무를 지켜봤다. 주민 허서영(69)씨는 “눈으로만 봐도 다른 나무들에 비해 나뭇잎 색깔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며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심 가로수는 열섬 현상을 감소시키고 그늘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이처럼 이로운 역할을 하는 가로수들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일단 올해 유독 길어진 폭염으로 생육 환경이 나빠진 게 원인으로 꼽힌다.

30일 서울 강남구 등에 따르면, 양재천 메타세쿼이아 일부 수목에서 잎이 누렇게 변하는 황화 현상과 조기 낙엽 증상이 나타났다. 이곳 나무들의 수령은 대부분 50년이 넘는다.

강남구가 토양시료를 채취해 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해 보니 수분과 양분 흡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수세(나무의 상태)가 약해졌고, 지속되는 폭염 탓에 수분이 날아가 탈수 현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구는 수분ㆍ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숨틀(유공간) 434개를 설치해 관수와 영양 공급을 하고, 더 피해가 심한 수목은 윗가지를 잘라 수분 증발량을 조절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조만간 토양 분석을 다시 실시한 뒤 2차 치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상기후 탓이 아니더라도 과도한 가지치기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서울기술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12개 자치구 60개 도로 양버즘나무 가지치기 현황 및 관리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일부 구간에서 나무의 머리를 잘라내는 ‘두절형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방식은 나무 형태를 파괴하고 잎의 성장을 늦춘다.

각종 공사 등을 이유로 밑동이 잘리는 등 무분별하게 베어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 종로구 서촌 일대 한 유명 카페 앞에 있던 벚나무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서대문구 홍제동에선 도로 확장에 방해가 된다며 수십 년 수령의 나무 20여 그루가 사라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에 대비해 가로수의 생육 환경을 보장하고, 나무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올 3월 ‘도시 내 녹지관리 개선방안’을 통해 ‘나뭇잎이 달린 수목 부분을 7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가로수 관리 기준을 제시했다. 환경 시민단체인 서울환경연합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기후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데다 도심 속 토양이 가로수가 성장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만큼 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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