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가 자유시 참변 가해자?... 책임자 처벌 탄원서 썼다"

입력
2023.08.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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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홍범도 저격, 쟁점별로 살펴보니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념·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국방부가 불을 지폈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 장군 흉상의 이전 필요성을 강조하며 28일 그의 공산주의 이력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일보는 29일 '홍 장군을 대한민국 이념에 반하는 공산주의자'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역사학자들의 해석을 들어봤다.

①자유시 참변 연루: "침소봉대… 사후 진상 규명 탄원서까지 제출"

국방부는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중심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자유시 참변 재판위원으로 참가했으며 △이후 소련 적군 대대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1921년 6월 발생한 자유시 참변(독립군이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해 소련군과 벌인 교전)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달랐다. 평생 홍 장군 생애를 연구해 온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국방부 주장에 대해 "외형적으로 그럴듯하지만, 홍 장군은 러시아 적군의 독립군 진압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부대를 다 빼냈다"며 "홍 장군을 '가해자'라고 보는 건 침소봉대"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참변 6개월 후 전모를 파악한 홍 장군은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탄원서를 소련 정부, 러시아 공산당, 국제공산연맹 측에 제출한 사실이 있다"고 반박했다. 반 교수에 따르면, 탄원서 제출 시점은 1921년 12월이며 홍 장군 외에 최진동, 이청천, 이병채, 허근 등 대대장급 29명이 참여했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자유시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홍범도 평전을 쓴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는 "당시 홍 장군은 다른 일로 자유시에 없었고, 나중에야 비참한 일이 발생한 걸 알았다"며 "나중에 재판에 참여한 것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렇게 뒷수습을 하고 자기 책임이라며 소처럼 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②레닌에게 자유시 참변 보고: "자랑 아닌 비참한 상황 보고… 사실 왜곡"

국방부는 "홍 장군이 1922년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 서명된 '조선군대장' 증명서를 접수했고, 그가 1930년대 작성한 이력서에는 '자유시 사태 보고를 위해 한인 빨치산 대표 자격으로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고 돼 있다"며 레닌 공산당과의 연루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은 "1922년 당시엔 레닌 러시아 혁명정부가 세계 약소 민족들에 굉장히 많은 지원을 할 때"라며 "표창은 빨치산으로서 공산당원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인들이 일본군과 싸웠던 활동을 격려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반 교수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러 간 게 아니라 비극적 상황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보고하러 간 것"이라며 "국방부는 단편적 사실을 동원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③봉오동·청산리 전투 빨치산으로 참가: "러시아 주둔 독립군 사령관 명시"

국방부는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 이후 행적을 근거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갔다"며 "특히 홍 장군이 1919~1922년 빨치산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 참가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공산주의 이력을 부각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당시 '빨치산'은 공산당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장 위원은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유격대)에서 나온 말로, 당시엔 항일부대(의병)라는 뜻으로 쓰였다"며 공산당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 장군이 북간도 지방으로 들어오면서 발표한 '유고문'이라는 선언문을 보면 직책에 '노령 주둔 대한독립군 대장'이라고 썼다"면서 "이는 러시아에 있는 독립군 사령관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빨치산 활동으로 해석하는 건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④공산주의자 육사에서 기리는 건 부적절: "색깔론 갇혀선 안 돼"

국방부는 "김일성이 소련공산당 사주를 받고 6·25전쟁을 자행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홍 장군이 공산당원이 된 배경은 이념적 판단보다는 생계를 위한 것이므로 공산주의자로 내모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교수는 "홍 장군은 일자무식의 포수 출신으로, 이념을 가질 사람이 못 된다"며 "노후에 생존을 위해 뭔지도 모르고 농사짓고, 연금 받으려고 가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 장군이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육사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냐'는 질문에도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사회주의 계열이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색깔론에 기반한 접근법은 옳지 않다"면서 "북한뿐만 아니라 외침에 저항했던 역사를 육사 생도에게 가르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국방부의 논리라면 왕정을 추구했던 의병세력, 아나키스트였던 이회영, 김좌진 모두 제외하는 게 맞다"며 "굳이 독립운동을 빈약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답게 다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경준 기자
손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