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석유는 리튬...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원자재 확보 적극 나서야"

입력
2023.08.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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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무기화 시대 한국의 대응]
석유 대신 핵심 자원 떠오른 리튬
수요 늘어나는데 공급망 위기 커져
中 의존도 낮춰 수입처 다변화해야
공급망 앞단 진출, 재자원화도 필수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은 '하얀 석유'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리튬을 원자재로 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현재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전방위로 쓰이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편 중 하나로 전기자동차 생산이 확대되면서, 리튬은 사실상 내연기관 자동차의 동력이었던 석유의 대체제로 떠올랐다. 리튬뿐만 아니라 배터리 원자재로 쓰이는 니켈· 코발트·망간 등도 한국·미국·유럽 등 첨단산업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국가들 사이에서 '핵심광물'로 불리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핵심광물을 확보하는 게 지상과제가 됐다.

한국일보는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전문가에게 묻고 듣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2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자원 무기화 시대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서경환 한국광해광업공단 핵심광물대응처장, 김태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장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최근 몇 년 새 광물 수요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전환됐다고 진단했다. 조성준 본부장은 광물 수요의 변화가 기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급망, 핵심광물 등의 용어가 쓰이게 된 발단은 기후위기"라며 "특히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지목되고,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국이 파리협정에 복귀한 것이 큰 변곡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대응책의 하나로 친환경 이동수단이 주목을 받게 됐고,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게 됐으며, 덩달아 전기차 핵심 부품에 쓰이는 광물 수요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핵심광물의 수요는 크게 늘었으나, 공급망의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경환 처장은 "기존에는 핵심광물 공급망이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형성됐다면, 현재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급망 재편의 시발점이 된 국가는 광물 정제·제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광물 가공 분야뿐만 아니라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남미·동남아시아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 위기에서 탈피하려면 일차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장상식 실장은 "핵심광물 확보에 있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서방 국가들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상황"이라며 "미국, 유럽 등이 추진하는 공급망 재편 전략과 탈중국화 추진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단순히 원자재 확보에서 특정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공급망의 '앞단'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 본부장은 "전기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벌써 원자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완성차업체들이 확보한 원자재로 배터리를 생산해 공급하기만 한다면 '방앗간' 역할에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해외자원 확보에 직접 나서더라도 국내 민간기업들의 수요와 일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태헌 위원은 "현재 국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광물 자체보다는 소재"라면서 "자원 확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수요 기업들이 공급망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위원은 폐배터리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재자원화' 역시 적극적으로 산업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30년부터 국내에서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며, 유럽연합(EU) 역시 이때부터 전기차 배터리의 재자원화 원료 사용을 일정 비율 의무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광산에서 직접 광물을 채굴하는 것보다 재자원화를 통해 농도가 높은 원료를 얻을 수 있어 정제 비용도 절감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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