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울분 장애'(PTED·Post 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라고 들어보셨나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들어봤어도 PTED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죠. (관련 기사: 트라우마와 PTSD는 다른 거라고?)
PTED는 부정적인 경험 이후 부당함·무력감·좌절감·허탈감 등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히는 반응성 장애를 말합니다. 핵심은 해고·가까운 사람의 사망·파산·사회고립·질병·이혼 등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느낌의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한 뒤, 격분 또는 울분이 지속되는 상태인데요. 여기에 기회가 된다면 앙갚음을 하고 싶다는 정서나 박탈감, 수치감 등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이 개념은 2003년 독일 사리테대학의 정신의학자 마이클 린든 교수가 처음 소개했습니다. 독일 통일 후 옛 동독인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울분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죠. 린든 교수에 따르면 울분은 '굴욕감과 분노가 대안이 없고 변화의 전망이 없다는 무력감과 결합한 복합 감정'입니다.
PTED는 PTSD처럼 △침습적 사고(반복적으로 해당 사건의 기억에 몰입하는 것) △회피 △과도한 각성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만약 이런 정신적 고통이 6개월 이상 지속됐는데도 방치된다면 자기 비하, 자살 충동 등으로 대인 관계와 사회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PTED는 PTSD나 화병, 우울증 등과는 다른데요. △PTSD 환자들은 기본적 믿음과 가치관(세상은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지적 구조)이 깨졌지만 PTED 환자들은 기본적 신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PTSD 환자들이 겪은 스트레스성 사건은 생명에 위협을 주는 정도인 데 반해 PTED의 사건은 일상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부정적 경험이라는 점 등이 구별됩니다.
또 감정이 바깥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화병이나 PTSD와도 차이가 있습니다. 분노와 다른 점은 무기력감이 더해진다는 데 있죠. 정상적으로 정동(다른 사람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감정 상태)을 보인다는 데서 우울장애와도 다릅니다. (관련 기사: 과하게 참아도, 과하게 분출해도 문제인 이것)
우리나라의 울분 지수는 어떨까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2021년 발표한 '2021년 한국 사회의 울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가 '만성적 울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도 대비 10.9%포인트, 2018년 대비 3.6%포인트 증가한 수치죠.
그렇다면 PTED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요법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울분을 얼마나 느끼는지, 이 때문에 어떤 고통을 얼마나 겪고 있는지 등을 스스로 인지하는 게 우선이라고 합니다.
그다음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이해하고,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키우고, 상반되는 인지와 감정을 서로 결합하는 과정 등을 통해 무너진 신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합니다.
※ 참고 자료
고한석, 한창수, 채정호 (2014), 외상후울분장애의 이해 , 대한불안의학회, 10(1)
▶터치유의 '에코 라디오' Ep.2 "감각에 집중하세요"…분노가 나를 삼킬 때 다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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