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속으로 비행기가 날고 있다. 해시태그에는 '그린' '에코프렌들리' 같은 용어들이 달렸다. 지난해 10월 한진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 게시물은 친환경 사업을 홍보하는 듯 보이지만 주인공은 정작 환경과 관련 없는 해외 물류사업이다. 그린피스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석유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전년 대비 2억6,800만 톤 증가했는데 이 중 절반은 항공산업"이라며 실제 사업과 무관한 자연 이미지를 사용한 이 게시물을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판단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인스타그램 계정 10개 중 4개에는 이 같은 그린워싱 홍보물이 게시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9일 '소셜미디어로 침투한 대기업의 위장환경주의' 보고서를 공개해 대기업들의 그린워싱을 꼬집었다.
조사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 집단 계열사 중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399개 기업이다. 그린피스는 시민 497명과 함께 이 기업들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1년간 올린 게시물 6만21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그린워싱 홍보물을 올린 기업은 165개로 조사 대상의 41.3%를 차지했고 그린워싱에 해당하는 게시물은 총 650건이었다.
유형별로는 제품의 성능이나 기업의 실제 노력과 무관하게 친환경 이미지를 사용하는 '자연 이미지 남용'이 절반(51.8%)을 넘었다. 한진의 게시물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유형 중 시민 조사단이 뽑은 대표 사례는 롯데칠성음료다. "멸종위기 동물 디자인을 라벨에 넣은 한정판 페트병을 소개하고 있지만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해양생물이 피해를 입는다는 정보는 누락됐다"는 게 이유다.
기업의 기후위기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책임전가' 유형도 40.0%였다. 석유화학기업 GS칼텍스의 '텀블러에 물을 담아 마시면 특별한 친환경 초능력이 생깁니다'라는 광고가 그 예다. 자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명시하지 않은 채 효과가 미미한 시민의 실천만 강조했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친환경 기술 개발로 혁신에 기여한다는 점을 지나치게 과장하면서도 관련 정보는 불분명한 '녹색 혁신 과장' 유형은 18.2%였다. 삼성스토어의 무풍에어컨 광고는 친환경 냉매를 사용했다면서 인증마크를 내세웠지만 이는 정부의 환경인증이 아닌 자사 마크였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작은 글씨로만 표시해 소비자가 오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산업일수록 그린워싱 콘텐츠를 많이 올리는 경향도 드러났다.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를 다루는 정유·화학·에너지 분야 기업의 게시물이 80건으로 가장 많았다. 시멘트 제조·사용으로 역시 탄소 배출이 많은 건설·기계·자재 분야는 62건으로 2위였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그린워싱이 만연한 이유는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정보 불균형"이라며 "그린워싱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공시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