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쓸 돈 없는데 밥상 물가 ‘꿈틀’… “내년 살림도 팍팍”

입력
2023.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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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경기 개선되자 가계대출 증가
"원리금 상환 부담, 소비 회복 제약"
높은 식료품 물가는 기후에 또 '흔들'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수준이 민간 소비 회복을 누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빚 갚느라 쓸 돈이 줄어든 와중에 이상기후 등으로 밥상 물가는 올라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28일 ‘민간 소비 회복 모멘텀에 대한 평가’, ‘국내외 식료품 물가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먼저 민간 소비의 경우 최근 회복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올 2분기에 전기 대비 0.1% 감소했고, 지난달에도 감소세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방역조치 완화로 반짝 반등했던 소비가 주춤하고, 높은 기온과 잦은 비로 대외 활동과 관련된 소비가 위축된 결과다.

앞으로는 날씨 등 일시적 요인이 사라져 민간 소비 회복 흐름이 재개될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단, 회복 정도는 ‘가계부채’에 달렸다고 짚었다. 주택경기 개선과 함께 가계대출이 늘면 소비 흐름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고금리 상황에선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 탓에 소비에 쓸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택구매 대기자들이 구매자금 저축을 위해 소비를 축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합하면 소비가 회복하더라도 속도는 더딜 것이라는 다소 우울한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 한은은 최근 하반기 민간 소비 전망을 1.4%에서 1.0%로 대폭 낮췄다.

고공행진 중인 식품 가격은 가계 살림을 한층 더 팍팍하게 한다. 집중호우, 폭염, 태풍 등 기상 여건 악화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치솟은 데다 흑해곡물협정 중단,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제한 등 대외 요인까지 겹치며 국내 식료품 물가에 대한 우려는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외 미국, 영국, 유로지역 등에서도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를 크게 웃도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식료품발 물가 불안(agflation·애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은은 전했다.

중장기적으로 엘니뇨와 이상기후가 국제 식량 가격을 밀어 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엘니뇨는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예년 평균 대비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3~6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하반기 중 해수면 온도가 1.5도 이상 높아지는 강한 엘니뇨가 발생해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해수면 온도가 1도 상승하면 평균 1, 2년 시차를 두고 국제 식량 가격이 5~7% 상승한다는 게 유럽중앙은행(ECB) 분석이다.

문제는 한국의 곡물(쌀 제외)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국제 식량 가격 충격은 고스란히 국내 물가에 전이된다. 국제 식량 가격은 국내 가공식품 가격에 11개월, 외식 물가에 8개월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는데, 가격 급등기엔 이 기간이 최대 2개월(가공식품 기준) 단축된다. 한은은 “식료품과 외식 물가는 기대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식료품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 부담이 증대되고 실질구매력도 축소될 수 있는 만큼 흐름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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