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나리오’에 춤추는 ‘4류 정치’

입력
2023.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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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 구속 여부 정치판 최대 관심사
비상한 안팎 국정현안 당파싸움에 매몰
이 대표 문제 조속 정리돼야 정치 회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말 전에 구속될지 아닐지가 요즘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다. 검찰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언제 청구할지,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 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면 체포동의안 표결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나아가 이 대표 유고 시 민주당은 어떻게 될지, 그 파장이 여야 총선엔 어떻게 작용할지 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우선 검찰의 영장 청구시점은 어차피 국회 회기 중이 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최근 검찰을 향해 “비회기 때 영장을 청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로선 당내 비명계의 이반 가능성 등을 감안해 회기 중 영장이 청구돼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는 상황만은 피하려는 안간힘인 셈이다.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구속되는 건 이 대표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선 비회기 중 영장이 청구되면 설사 구속돼도 ‘정치검찰’ 탄압론을 펼 수 있다. 반면,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 야당 내에도 구속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됨으로써 정치탄압 논거가 크게 훼손된다. 또 비회기 중 구속되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는 헌법 44조 2항 규정에 따라 민주당의 석방결의안 처리를 통해 다시 석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기국회 개원이 눈앞에 닥쳐 비회기 중 영장 청구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따라서 이젠 회기 중 체포동의안 처리의 향방이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론 체포동의안이 결국 처리돼 이 대표가 구속되고, 민주당도 격동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이낙연 김두관 같은 이의 부상 가능성과 ‘옥중공천’을 통해서라도 이 대표가 총선을 이끌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 섞인 분석도 대두된다.

반면, 체포동의안 표결 자체가 끝내 무산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표결 중 집단 퇴장하는 방안을 강행하면 당내 이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함과 동시에, 표결 자체를 불성립시켜 구속을 면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 경우엔 동의안이 차기 본회의에 또다시 상정(의장 재량)되는 등 민주당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약속을 깨더라도 그게 이 대표 측과 민주당 총선에 유리하다면 실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되고, 민주당 의원들이 일부 이반해도 동의안은 부결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 이 대표가 구속을 피해 총선을 이끄는 게 되레 국민의힘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여당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는, 좀 웃기는 ‘음모론’이다. 하지만 웃기든 아니든,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들끓고, 그런 시나리오에 정치권이 끝없이 휘둘리는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지난 1년 내내 국내 정치는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채 옴짝달싹도 못했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 걸림돌은 물론, 여당 재정비와 새 출발을 향한 민주당의 쇄신도 물거품이 됐다. 당장 신냉전의 전개와 한반도 긴장, 북한의 이상 조짐 등 비상한 안보현안은 물론, 글로벌 반도체전쟁, 경제활성화 같은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정치적 담론도 실종되다시피 한 상태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를 ‘4류’라고 비토한 지 30년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정치가 아직도 의무경찰제 부활론에 대한 비판이 고작 “청년을 수단화하는 정책”이라는 난감한 야당 대표 한 사람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어찌 4류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야 모두 총선 유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이재명 문제’를 최대한 조속히 정리하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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