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되어 가고 있다."
환경 관련 기업분석 전문기관 플래닛트래커(planet tracker)가 올해 초 발표한 그린워싱(Greenwashing) 보고서의 결론이다. 기업들의 그린워싱 행위가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히드라처럼 다양한 형태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린워싱이란 기업의 행위나 제품이 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반환경적인 부분을 감추는 사기 행위를 말한다. 환경문제 심화로 기업에 대한 책임 추궁이 거세지자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대응을 하려는 기업들의 녹색 사기 유혹도 커지고 있다.
좁은 의미의 그린워싱은 제품·서비스에 대한 기업의 의도적인 거짓말 혹은 과장, 은폐 행위를 말한다. 비스페놀A를 첨가하지 않은 것을 두고 무독성이라고 홍보하거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이 아닌 사탕수수라고 홍보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회용 컵을 조금 두껍게 만들었다고 해서 재사용 컵이라고 과장하거나 잘 팔리지도 않는 제품의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원료를 조금 섞고는 마치 본격적으로 재생원료 용기 음료를 출시한 것처럼 떠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며 탄소 다이어트를 요구하거나 더 많은 석유를 채굴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홍보하는 석유회사의 뻔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뜨끔할 회사들이 많겠지만 굳이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넓은 의미의 그린워싱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약속 이행이나 확인의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속이거나 기업의 환경파괴 행위를 은폐한 것을 말한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친환경 선언을 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넷제로트래커(Net zero tracker)에 따르면 해외 2,000개 상장기업 중 702개 기업만이 넷제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456개 기업만이 목표 이행 보고 절차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언론이나 환경단체의 기업 환경 선언에 대한 추적 및 평가 작업이 철저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언만 하고 '먹튀'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복잡한 공급망을 핑계로 환경적으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원료나 부품이 조달되었는지 확인을 게을리하는 것도 그린워싱에 포함되는 추세다. 한 글로벌 가구회사는 국제삼림관리협회(FSC) 인증을 받은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홍보했지만 환경단체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 멸종위기동물이 서식하는 숲에서 벌목한 목재가 일부 사용되었다고 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판매망을 통해 빈 용기를 수거한 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겠다는 업체도 많아지고 있는데 재활용을 위탁한 회사가 재활용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전 과정을 확인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린워싱은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왜곡하고 기업들의 환경파괴 행위의 초점을 흐리게 한다.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을 강조하는 ESG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린워싱 경계수위도 높아져야 한다. 그린워싱 판단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고의적인 거짓말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소비자의 그린워싱 감시 활동도 중요하다. 소비자 대상 ESG 실천교육을 하기도 하는데, 소비자에게 필요한 ESG 실천은 바로 기업 감시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