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래를 살려주세요!"... 상괭이 주검이 말하는 가여운 죽음

입력
2023.09.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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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연구센터, 해부 현장 가보니]
질식사 징후 폐 속 거품 발견
그물에 질식사, 선박 부딪혀 골절
개체수 급감 상괭이... 대책 시급

비린내가 나는 넓은 공간에서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죽은 채 바다를 떠돌거나 뭍에서 발견된 후 언 상태로 보관된 토종 돌고래 상괭이 세 마리가 부검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얼굴을 하고 있어 ‘웃는 돌고래’라는 별칭으로 불리지만, 정작 이들의 주검은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폐에 검붉은 충혈이 있고, 폐 속의 큰 기도인 기관지에 거품이 있네요. 물속에서 숨쉬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24일 울산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고래연구센터. 셋 중 가장 어린 개체를 해부하던 이경리 해양수산연구사가 “혼획으로 죽은 뒤 버려져 바다 위를 떠돌다 육상에서 발견(좌초)됐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폐 속 거품은 폐로 호흡하는 돌고래의 대표적인 질식사 징후다. 기도에 들어간 바닷물이 점막을 자극하면 점막은 기도를 보호하기 위해 점액을 분비한다. 점막 표면의 세포가 터지면서 흘러나온 혈액과 점액질, 바닷물이 섞이면서 거품이 만들어진다. 고기잡이 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숨을 쉬기 위해 떠오르지 못한 채 ‘질식사’했다는 얘기다.

2016년 상괭이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면서 고래 고기로 유통되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어민들은 상괭이가 잡히면 바다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혀 주변에 돌기가 있는 점으로 볼 때 아직 젖떼기(이유) 중인 두 살 남짓 미성숙 개체로 추정했다.

그 옆 부검대에 오른 몸길이 163㎝의 암컷 상괭이는 허리뼈(요추)가 크게 휘어 있었다. 2021년 12월 울산 앞바다에서 죽은 채로 표류하던 개체다. “죽은 후에는 인대가 요추를 당긴 채로 경직돼 있어 충격을 받아도 형태가 고정돼요. 이 상괭이는 태어날 때부터 허리뼈가 휘었거나, 외부 충격으로 요추가 부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외부 충격일 가능성이 높냐'는 질문에 이 연구사가 말을 이었다. “범고래나 상어 때문이라면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손상은 없어요. 둔탁한 무언가와 부딪혔다는 거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선박과의 충돌이에요.”

나머지 개체는 2019년 3월 동해에서 자망에 걸려 질식사한 수컷 상괭이다. 자망은 어류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설치하는 그물이다. 이날 해부를 포함해 21~25일 진행된 2차 해양포유류 해부 조사에선 상괭이 7마리와 참돌고래 3마리, 점박이물범 1마리 등 11마리의 부검이 진행됐다. 앞서 7월 1차 조사에선 상괭이‧참돌고래‧큰돌고래‧점박이물범 11마리를 해부했다.

매년 1,000마리 안팎의 고래가 폐사한다. 해양경찰청의 고래류 처리확인서 발급 현황을 보면, 2019년부터 4년 동안 국내 연안에서 5,252마리의 고래가 목숨을 잃었다. 고래류 처리확인서는 혼획·좌초·표류된 고래를 신고한 사람에게 발급하는 증명 서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상괭이(3,544마리‧67.5%)다. 이어 참돌고래(1,070마리)와 낫돌고래(212마리)가 뒤를 이었다. 두 돌고래 모두 상괭이와 같은 해양보호생물이다.

혼획은 대표적인 폐사 원인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2017~2020년 사이 폐사한 고래 중 어획 활동 중 어망에 걸려 죽는 혼획이 2,890마리로 전체 폐사(4,109마리)의 70.3%를 차지했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는 “해경에 신고하고 서류를 발급받는 번거로움 때문에 혼획 등으로 인한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을 앞세운 어업 활동과 정부의 미온 대처로 한국의 고래류는 멸종의 길로 치닫고 있다. 상괭이만 해도 2005년 약 3만6,000마리에서 2011년 1만3,000마리로 약 64% 급감했다. 매년 900~1,000마리 안팎의 상괭이가 혼획 등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개체수는 1만 마리 이하로 추정된다.

앞서 수산과학원은 별도의 탈출유도용 그물을 부착해 상괭이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개량형 그물을 만들었으나, 보급은 지지부진하다. 김 교수는 “상괭이 탈출구 쪽으로 물고기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어민들이 사용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사용 권고에 그칠 게 아니라, 손실 보전을 통해 돌고래 혼획 중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사는 먹이 사슬에서 인간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돌고래의 몰락이 결국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양 생태계가 돌고래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미세플라스틱, 해양 쓰레기 문제가 인체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돌고래 수가 줄어든다는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죠.”

울산=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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