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삼성의 스텝을 꼬이게 했는가

입력
2023.08.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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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 돌아갔다.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國政壟斷) 사태 때 "전경련이 정경유착(政經癒着)의 중심에 있다"며 나온 지 6년여 만이다.

그런데 상황이 뒤죽박죽이다. 삼성증권의 복귀 거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회사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전경련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22일 전경련 임시총회를 앞두고 삼성증권,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5개 계열사가 이사회를 할 때만 해도 전경련에 가려는 '요식 행위'라는 시각이 많았다. 삼성증권이 예상을 깬 것은 전경련이 정경유착을 막을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않아서다. 삼성에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이 또 한 번 주목받게 된 셈이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도 곤란해졌다. 준감위는 2019년 이재용 회장의 뇌물, 횡령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재판장이 준법 경영을 개선하라고 주문한 뒤 삼성이 만들었다. 준감위는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준법 의무를 잘 지키는지 따져보고,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준법 감시 중이다.

삼성은 그동안 준감위의 권고를 전경련 복귀 명분으로 삼았다. 재계에서는 준감위에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말이 많았다. 준감위도 부담스러웠는지 회의를 두 번이나 했다. 그런데 결론이 묘했다. 처음엔 "전경련이 정경유착 고리를 끊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더니 이틀 뒤엔 "전경련 복귀는 관계사 이사회와 경영진이 정할 문제"라고 '조건부 승인'으로 정리했다. 단 "혹시 정경유착이 있으면 탈퇴하라"고 권했다.

더 이상한 건 삼성이다. 삼성증권의 반기를 두고 그룹이 준감위를 등에 업고 몰아붙이다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오자 뒤늦게 "준감위가 삼성증권에는 (전경련에) 복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더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모든 건 계열사 이사회와 경영진이 정한다"는 처음 설명과 결이 다르다. 삼성과 준감위가 전경련 복귀를 두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하자 삼성증권은 전경련에 돌아갔다가 무슨 일이 나면 스스로 책임져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은 전경련 복귀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런 일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꿨다. 물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명도 없이.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이 이렇듯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낯설다.

전경련은 달라진 걸까. 새 회장(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뽑고 간판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꿔 달기로 했다. 딱 거기까지다. 오히려 복귀를 부담스러워하는 삼성, SK, 현대차, LG 등에 뒷길을 만들어줬다. 이들그룹의 16개 계열사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사 자격은 유지한 점을 이용해 전경련이 한경연을 흡수하는 꼼수를 썼다. 삼성증권처럼 거부하지 않으면 이들은 자동으로 전경련에 속한다. 4대 그룹은 보는 눈이 많아서인지 복귀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회비 납부 등 민감한 문제는 결정하지 않았다는 여지만 남긴다.

류진 새 전경련 회장은 앞으로 정경유착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김병준 전 회장 직무대행에게 고문 자리를 줬다. 경제계 활동은 직무대행 6개월이 전부인 그는 누가 봐도 친정부 성향의 정치권 인사다. 이래서야 '재계 맏형 복귀'라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까.

박상준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