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팁(봉사료)'을 주세요."
최근 서울의 한 유명 베이커리 카페에 '팁 박스'가 등장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이 카페는 수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빵을 직접 골라 계산하는 구조다. 종업원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계산이 전부다. 카페를 방문한 이들은 "손님과 직원이 만나는 건 계산할 때랑 크림치즈 고를 때뿐인데 팁을 줘야 하냐"는 불만을 터트렸다. 팁에 대한 항의가 줄 잇자 카페 측은 "팁 박스는 인테리어였다"며 슬그머니 박스를 치웠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팁 문화가 국내에 상륙했다. 일부 카페와 식당, 택시 등 서비스업에서 먼저 도입하는 분위기다. 지난 1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국에도 팁 문화가 들어와 버렸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케이크랑 카페라테, 아인슈페너를 시켰는데 직원이 결제하는 태블릿PC를 돌려서 팁 화면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팁 어떠신가요?' 하고 물었다"며 "화면에는 5%, 7%, 10%라고 적혀 있었는데 어이없어서 괜찮다고 거절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월에는 '서빙 직원이 친절히 응대했다면 테이블당 5,000원 정도의 팁을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테이블에 올려둔 고깃집이 화제가 됐다. 최근 서울 강남 일대 레스토랑에는 계산서에 팁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는 곳도 있다. 직장인 정모(39)씨는 "테이블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배정됐고, 굉장히 친절했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쳐서, 계산하면서 음식값의 10% 정도의 팁을 냈다"고 말했다.
택시에도 팁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생겼다.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T는 지난달 19일부터 '감사 팁'을 추가했다. 택시를 이용하고, 서비스 최고점인 별점 5점을 주면 팁 지불 창이 뜬다. 1,000원‧1,500원‧2,000원 중 고를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팁 지불 여부는 고객의 자율적인 선택사항"이라며 "감사 팁 기능은 기사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경우 드릴 수 있도록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 운영 첫 주, 하루 평균 2,000여 명이 기능을 이용했다.
대개 멀미하는 아이를 위해 부드럽게 운전한 기사, 분실물을 찾아준 기사 등이 팁을 받았다. 택시를 이용하고 팁을 지불한 강모(40)씨는 "좋은 기사를 만나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예전에 현금으로 택시비를 내고 친절한 기사에게 잔돈을 안 받기도 한 것처럼 팁을 냈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의 한 주유소는 최근 '신속 주유 서비스' 명목의 추가요금 2,000원을 받고 있다. 이 서비스는 직원이 주유를 도와주는 대가다. 해당 주유소는 "직원들 월급을 주려면 기름값과 별도로 주유비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의 일부 '셀프주유소' 중에서도 직원들이 기름을 넣어주는 경우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
'팁' 도입에 대다수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데이터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1.1%가 도입에 반대했다.
서비스 편차가 크다는 점이 팁에 부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한 누리꾼은 "매우 친절한 종업원에게는 팁을 주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요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며 "팁 문화가 정착되는 건 달갑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팁 문화가 들어오면 팁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팁을 주면 친절하고, 팁을 주지 않으면 불친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 음식점은 고객의 우려에 "저희 매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 팁을 받지 않는다"며 "직원 칭찬과 서비스 후기는 SNS에 남겨달라"고 공지했다. 자율적인 팁 문화가 마련된 호주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프리랜서 이모(25)씨는 "간혹 팁을 받으면 근무할 때 사기가 올라 열심히 일했던 기억도 있다"면서도 "팁이 도입되면 오히려 서비스의 수준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인 주문 결제기(키오스크)를 이용하거나 셀프서비스 매장이 늘어난 상황도 팁에 반대하는 이유다. 직장인 최모(31)씨는 "요즘은 술집에서도 태블릿PC로 주문을 받아 직원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며 "서비스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 뒤늦게 팁 문화를 들여오는 건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일각에서는 '직원 월급 떠넘기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김모(22)씨는 "간혹 팁을 주는 손님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주는 팁 문화가 정착된다고 해서 수입이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며 "차라리 월급이 오르는 게 직원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이라고 했다. 누리꾼들도 "직원 월급을 손님에게 전가시키는 후진적 제도", "열심히 일한 직원은 (손님이 아니라) 사장이 챙겨야 한다" 등 지적했다.
정작 팁 제도가 정착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팁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고물가 여파로 식당과 카페 등에서 20%에 가까운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팁 플레이션(tipflation)' '팁 피로감(tip fatigue)'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마이클 린 코넬대 교수는 "소비자들은 팁 문화에 대해 피로감을 넘어 짜증을 느낀다"면서 "결제 시스템에 팁 옵션이 추가되면서 소비자들이 팁을 적게 주거나 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