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경제 5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가 11개국으로 외연을 확장한다.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주요 7개국(G7)을 넘보는 거대 정치·경제 협의체의 탄생이 현실화했다. G7 대항마로 브릭스의 몸집을 키우려 했던 중국·러시아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서려는 힘이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브릭스는 24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15차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하기로 했다. 올해 의장국인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재 멤버인) 5개 회원국은 브릭스 확장을 위한 원칙, 기준, 절차 등에 합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회원국 자격은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2002년 출범한 브릭스가 신규 가입국을 받는 건 2010년 남아공 가입 이후 13년 만이다. 회원국 확대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19년 이후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이번 정상회의 핵심 안건이었다. 5개국 정상들은 23일 예정됐던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며 장시간의 토론을 거친 끝에 브릭스에 가입을 요청한 22개국 가운데 6개국의 가입을 결정했다. 인도·브라질은 브릭스가 G7에 대항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꺼려 확장에 소극적이었지만, 사실상 중국·러시아의 입김에 밀렸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러시아는 브릭스 회원국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중국은 브릭스를 활용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맞서 세력을 불리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중 패권 경쟁이 신냉전으로 본격 비화된 데다, 최근 한국·미국·일본의 결속도 중국의 야심에 불을 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회의에서 "어떤 저항이 있어도 더욱 강력한 브릭스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외신도 G7에 필적하는 협의체를 구상한 중국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릭스 확장은) 서방과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블록을 강화하려던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동 내 패권을 다투는 사우디와 이란이 나란히 새 회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국가 간 정치·역사적 문제를 뛰어넘어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사우디는 최근 중국·러시아에 손을 내밀어 외교·안보 파트너 다각화를 시도 중이고 이란은 미국의 오랜 적대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과 UAE, 브라질 등과 함께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포함된 건 브릭스가 최대 에너지 생산국과 최대 소비자를 한데 모아 엄청난 경제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라며 "세계 에너지 무역의 대부분이 달러화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대체 통화로 더 많은 무역을 추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브릭스는 현재 5개 회원국만으로도 전 세계 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