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화학물질 규제를 위험도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환경영향이 적다고 판단되는 개발사업은 간이평가만 실시하는 등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완화한다. 규제를 덜어내 기업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지만 환경은 뒷전에 두는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24일 오전 서울 구로구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화학물질 관리 등 환경 킬러규제 혁파 방안'을 보고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연내 개정해 기업의 등록 비용 부담 등을 줄이기로 했다.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 중인 화학물질 규제는 '위험비례형 규제'로 바꿔 중소기업처럼 취급량이 적은 사업장은 정기검사 등을 면제·완화할 방침이다. 화학물질 등록 시 필요한 해외 평가자료도 제조·수입사가 출처만 제출하면 정부가 직접 확인할 계획이다. 지금은 기업이 비용을 들여 자료를 구매하고 있다.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도 완화한다. 연간 100㎏ 이상 제조·수입 시 등록 의무가 있는데, 이를 연간 1,000㎏ 이상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유럽연합(EU) 등 화학물질 관리 선진국 수준에 맞추겠다"라고 설명했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사업에는 '간이' 환경영향평가 도입도 추진한다. 정식 평가에서는 사업의 환경영향 및 저감 방안을 담은 평가서를 두고 사업자가 환경당국과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개발된 지역에서 시행되는 사업이나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경미한 사업은 이 같은 협의 과정을 생략할 방침이다. 또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권한은 지방자치단체 이양도 계획하고 있다.
긴급 재난 대응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고 소하천·하천기본계획에 대한 전략평가 시 환경당국 협의와 주민 의견 수렴을 동시해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평가 기간을 단축해 재해에 신속히 대응한다는 취지다. 현재 국가 주도 하수도사업은 유역하수도정비계획에 포함됐다면 중복평가를 막기 위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는데 앞으로는 민간 투자에도 같은 특례를 적용할 예정이다.
기업 투자를 막는 규제완화가 목적이지만 벌써부터 우려가 쏟아진다. 화학물질 등록 기준 상향만 해도 전문가들은 규제 수준이 질적으로 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미나 단국대 의대 교수는 "EU에서는 1톤 미만 신규 화학물질이라도 신고를 해야 하고 우리보다 더 상세한 자료를 요구해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지자체 이양은 지역 개발 명목으로 평가가 요식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단체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축소되면 토지 분할로 평가를 피하는 등 꼼수가 우려된다"며 "환경부가 환경보전이라는 책무는 뒤로하고 무책임한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 간 산업폐수 재이용을 금지하는 규제를 풀겠다는 것도 논란이다. 최근 환경부가 이런 행위를 이유로 현대오일뱅크에 1,50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19~2021년 폐수 33만 톤을 인근 현대OCI 공장으로 보내 용수로 활용했다. 이 폐수에 법상 허용기준을 넘는 페놀이 들어 있어 환경부는 불법배출로 과징금을 때렸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재활용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공업용수가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폐수 재이용 허용 요구가 많았다"면서 "규정이 바뀌어도 현대오일뱅크 사례에 소급해 적용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