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사과 가격이 폭등하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팔 사과가 없어 울상이다. 이른 봄 냉해에 이어 여름에 긴 장마와 폭염 등이 겹쳐 병해충이 들끓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상품 가치가 있는 사과 수확량이 급감한 탓이다.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가락시장에서 24일 경매된 사과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 3배에 육박한다.
여름 사과인 푸른색 아오리는 10㎏ 1상자(특) 낙찰가가 6만~6만3,000원, 평균 가격은 6만1,118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만494원보다 두 배 비싸졌다. 하품(下品) 평균 경매가도 3만62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787원의 3배가 넘는다.
이제 막 출하가 시작된 홍로는 특품이 9만5,000~14만 원, 평균 10만6,821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8,418원)의 1.5배다. 홍로는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까지 주로 수확하는 품종으로, 추석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70% 이상인 부사 계열은 10월부터 본격 수확한다.
사과 가격이 치솟은 건 생산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사과 생산량은 46만 톤(t)으로, 지난해보다 19%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올해 냉해와 장마, 폭염이 연이어 찾아온 이상기후와 무관치 않다. 3, 4월엔 이상 저온이 지속돼 꽃이 얼어 마르는 냉해가 심각했다. 전국 사과 재배 면적의 60%를 차지하는 경북 지역만 해도 축구장 2만 개 면적인 1만3,850헥타르(ha)의 냉해 피해를 입었다. 이후 어렵게 달린 열매는 긴 장마에 직격탄을 맞았다.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수해 피해는 5,530㏊, 태풍 카눈 피해(잠정)도 1,200㏊나 된다. 여기에 고온 다습할 때 주로 발생하는 탄저병 발생이 올해는 예년보다 10일가량 빠른 지난달 27일 확인됐다. 경북도농업기술원은 7월 경북 북부 지역은 일평균 기온 23~27도의 고온이 지속되고, 강우 일수가 20일 이상으로 탄저병 발생의 최적 조건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수확량 감소보다 가격 인상 폭이 더 높아 서민 부담은 크더라도 농민들에겐 이득일 것 같지만 실상은 또 다르다. 수확한 사과의 전반적인 품질이 워낙 좋지 않아서다. 한마디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사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2대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38ㆍ경북 청송군)씨는 “냉해로 달린 열매도 예년보다 못했는데, 긴 장마로 병해충이 심해 홍로 같은 경우 수확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라며 “풍년일 때나 흉년일 때나 최상품 가격은 항상 비싼 편인데, 상품(上品) 비율이 더 크게 줄어든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손에 쥐는 돈은 지난해 반도 안 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고대환 경북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은 “올해는 냉해와 수해, 병충해에 태풍까지 사과 흉년의 모든 조건을 갖춘 최악의 해”라며 “다음 주에도 잦은 비가 예보된 만큼 남은 기간 철저한 생육 관리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